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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유스티니아누스는 ‘무법 황제’였다

등록 2015-12-03 20:50

잠깐독서
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

프로코피우스 지음, 곽동훈 옮김
들메나무·1만5000원

“비잔틴제국이라는 길을 프로코피우스라는 안내자를 따라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에드워드 기번이 역작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바친 헌사는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비잔틴제국 비사>는 6세기 로마 역사가 프로코피우스가 쓴 어둡고도 흥미로운 비망록이다. 후대 역사가들이 비잔틴제국이라고 부른 동로마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재위 527~565년) 치세에 절정의 화려함을 뽐냈다. <로마법대전>을 완성하고, 반달족·고트족 등 ‘야만족’들에게 빼앗긴 고토를 회복했으며,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성소피아 성당을 비롯해 수많은 멋진 건축물들을 쌓아올렸던 바로 그 황제다.

황실 사관이던 프로코피우스는 <건축론>에서 황제의 빛나는 건축 치적을 찬양했다. <전쟁사>에서는 황제의 명장 벨리사리우스의 활약을 생생히 묘사했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 뒤엔 어둠이 짙었다. 프로코피우스는 공식 역사서와 별개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추악한 욕망, 우둔함과 교활함, 낯뜨거운 사생활도 낱낱이 기록했다. 그에게 “이 인간은 워낙 많은 악덕을 지니고 있어서, 마치 자연이 다른 이들의 수많은 악덕을 모아 이 인간의 영혼에 심어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책에 묘사된 유스티니아누스는 그 자신이 법인 동시에 무법의 화신이었다. 제국 시민들의 재산을 닥치는 대로 강탈했고, 로마를 침략하는 훈족은 돈으로 구슬렸다. 돈맛을 본 훈족은 잊을 만하면 변경에 출몰했다. 반면 정복한 땅의 사람들은 거의 몰살했다. “누군가 리비아에서만 500만명이 죽었다고 말한다면, 필자의 생각에는 진짜 사망자 수의 절반 밖에” 안 됐다. 황제는 눈에 드는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극장 매춘부 출신의 황후도 “쾌락의 세계에서 패배하는 법이 없었다.” 비잔틴제국은 황제 사후로도 900년을 버텼지만, 제국의 위엄과 기상은 이때 이미 한풀 꺾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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