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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웃사이더’는 어떻게 미국의 공감을 얻었나

등록 2015-12-03 20:58수정 2015-12-04 10:29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가 지난 7월4일 아이오와주 댈러스 카운티의 워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독립기념일 행진을 하다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가 지난 7월4일 아이오와주 댈러스 카운티의 워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독립기념일 행진을 하다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무소속 한계에도 진보입장 견지
주민들 찾아가는 토론으로 설득
‘공화당 100년 아성’ 무너뜨려

민주-공화 절충 ‘개정법률’ 양산
부자감세 반대 8시간 명연설로
대통령 후보 반열에 우뚝

정직한 분노로 희망·꿈 이야기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열어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버니 샌더스 지음, 홍지수 옮김/원더박스·1만8000원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
버니 샌더스 지음, 이영 옮김/북로그컴퍼니·1만5000원

“좋아하냐고? 사랑하지!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인 와중에 우리 편이라고는 그이밖에 없어.” 이런 평판을 듣는 정치인이 우리 정치판에 있기나 할까.

미국에는 있다. 80대 할머니 유권자로 하여금 주저없이 사랑을 고백하게 만든 사람, 버니 샌더스. 자칭 ‘민주사회주의자’.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일대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 소신을 꼿꼿이 지키면서도 그 소신으로 대중적 인기까지 거머쥔 전례 없는 정치인.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책 두 권이 나란히 나왔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이 정치 자서전이라면,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은 2010년 12월10일 연방 상원에서 있었던 기록적인 ‘필리버스터’(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행위) 연설을 그대로 옮겨 그의 정치철학과 공약, 정책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 우직한 아웃사이더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고 했다. 버니 샌더스는 우직하다. 1941년생인 그가 처음 정치에 도전한 것은 31살 되던 1972년, 버몬트주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이름도 낯선 자유연합당 후보로 출마하면서다. 엉겁결에 뛰어든 첫 선거에서 그는 2.2% 득표로 좌절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 “정치적 변화의 과정은 길고 험난하다는 사실”을 통절히 깨닫는다.

낙선이 이어지는 절치부심의 10년을 보내고 1981년 같은 주 벌링턴시의 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무소속’ 샌더스는 단 10표 차로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공화당의 100년 아성’이라는 시골 버몬트주에서 4선 시장, 8선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2006년 마침내 연방 상원의원이 되어서도 그의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부자들은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나머지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소수의 금권에 휘둘리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과두정치나 다름없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들을지는 기업들이 소유한 거대 매체들이 결정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제는 국민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다. 교육 체제, 특히 공교육은 실존하는 위험이다.

별로 새롭지 않은, 그러나 거창해 보이고 정치적으로는 ‘위험한’ 이런 주장을 그는 ‘입’ 대신 ‘발’로 전했다. 국민 대다수가 자기 지역 연방 상원의원의 이름을 모르고, 유권자 절반 이상이 투표하지 않는 현실에서도 그는 지지자들과 함께 직접 사람들을 찾아갔다. 마을 주민회의에 전문가들을 초청해 빈곤·아동·여성·교육 정책에서 국제 문제까지 격의 없는 토론을 벌였다. 보수 세력을 비판하고, 부유세 도입, 정치자금 모금 제한, 국방비와 기업 특혜 예산의 삭감과 같은 진보적인 정책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런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교육 과정이 샌더스가 성공한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샌더스는 선거운동을 통해 자신의 지지율뿐 아니라 투표율까지 끌어올렸다.

행정가로 할 수 있는 일은 주저하지 않았다. 벌링턴 시장 때 샌더스는 프랜차이즈 대형마트의 시내 입점을 막고 시민으로 구성된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소상인들의 상권을 보호했다. 시장 직속으로 예술위원회를 설치해 시민들이 예술·문화 행사를 무료로 즐길 수 있게 했다. 이건 그가 한 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직함이 신뢰를 낳고, 신뢰가 인기로 이어졌다. “버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진보 진영만이 아니다. 정치에 전혀 관심 없다는 사람들, 정치인은 하나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버니를 가장 좋아한다.”(미국의 대표적 엔지오인 ‘퍼블릭 시티즌’ 마그리트 랑네스 부회장)

■ ‘영혼’이 있는 정치

샌더스는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우리의 386 정치인들만큼 치열한 시대를 살지는 않았어도, 그는 시카고대학에 다닐 당시 강의실보다 도서관에서, “교실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미국 최대라는 이 대학 도서관에서 그는 제퍼슨, 링컨, 프롬, 듀이, 데브스,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프로이트, 라이히에 심취했고, 인종평등회의와 학생평화연합 등에서 활동했다.

시카고는 알린스키(1909~1972)와 오바마의 도시다. 그곳을 기반으로 가장 탁월한 조직운동가의 면모를 보였던 알린스키는 “대중적 개혁이라는 지지 기반 없이 정치적 혁명을 상정하는 것은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라며 ‘급진적 낭만주의’에 빠지지 말고 ‘체제 내부’에서 한걸음 한걸음 변화를 도모하라고 가르쳤다. 알린스키의 정신적 제자를 자처한 이는 오바마였으나, 그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한 사람은 샌더스였다.

그는 지금껏 크고 작은 선거를 모두 16번 치렀다. 승리한 횟수가 더 많지만, 패배한 것도 여러 차례다. 첫 출마에서 당선까지 10년은 ‘정치 낭인’이나 다름없었다. 유혹이 없지 않았지만, 신념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외골수는 아니다. 연방 상원에 진출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낀 ‘무소속’의 지위를 활용해 숱한 법률 개정안을 성사시켰다. 혁명의 성취와 같은 급격한 변화가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인정하고 작지만 실질적인 진보를 이뤄낸 것이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개정의 왕’(Amendment king)이다. 유연했지만, 원칙은 양보한 적이 없다. ‘부자감세’ 법안의 시효 연장에 반대하며 장장 8시간 35분을 이어간 2010년 필리버스터 연설은 그의 진정성을 전 미국에 알렸다. 샌더스는 이를 계기로 일약 대선 후보 반열에 올라섰다.

‘가지 않은 길’을 쓴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나는 젊어서 급진파가 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늙어서 보수파로 변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세파의 시험을 견딜 자신이 없거든 젊어서 함부로 분노하지 마라는 점잖은 충고일 텐데,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백발의 샌더스는 프로스트가 가지 않은 그 길을 지금도 걷고 있다. “오랜 세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명분을 위해 선출직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면서 영혼 없는 정치를 하지 않는 데 상당히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그렇다고 장밋빛 환상에 젖은 낙관주의자도 아니다. <… 정치 혁명>의 2015년 개정판 서문에 샌더스는 “우리 세대에 실현되지 않을 희망과 꿈에 관한 책”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그가 민주당 후보로 내년 대통령 선거에 나설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정치 역정이 공감을 얻는 까닭은 74살 나이에도 때 묻지 않은 정직한 분노 때문일 것이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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