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언 플린. 사진 헤이디 조 브래디(Heidi Jo Brady) 제공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푸른숲·9000원 <나는 언제나 옳다>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세계적 베스트셀러 <나를 찾아줘>의 작가 길리언 플린의 단편소설이다. 원작은 지난해 여러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책 <사기꾼들>(Rogues)에 ‘무슨 일 하세요?’(What do you do?)란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지난달 <어른>(The Grownup)이라는 단행본으로 따로 출간되었는데, 그 둘과도 또 다른 한국어판 제목은 역시 플린의 대표작을 염두에 둔 작명으로 보인다. 번역판으로 원고지 200장이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단순한 이야기 속에 치열한 심리 싸움과 날카로운 통찰, 거듭되는 반전 그리고 독자를 상대로 한 일종의 게임까지 들어 있어 읽는 재미는 결코 작지 않다. 소설 앞부분에서 주인공 ‘나’는 “무슨 일 하세요?”란 질문에 “고객 서비스업에 종사해요”라 답한다. 이 여성이 실제로 하는 일인즉 남자 손님들의 자위를 손으로 도와주는 것. 서비스업이 아니랄 수는 없겠다. 3년 동안 2만3546번 ‘손일’을 한 끝에 손목 터널 증후군에 걸린 그는 ‘심리 치료사’ 그러니까 점을 치는 일로 직업을 바꾼다. 그런 그를 카터후크 메이너라는 저택에 사는 여자 수전이 찾아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건물 정면 전체가 정교하게 조각된 석조물”인 이 빅토리아 시대 저택은 첫눈에 주인공을 떨게 만들 정도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수전은 “집이 밤새도록 삐걱대”고 자신의 방 벽에 핏자국이 흐른다면서, 열다섯 살 먹은 의붓아들 마일즈가 자신과 자신의 어린 아들을 죽이려 한다고 호소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빅토리아 시대 카터후크 가문 이야기에 나오는 살인자 소년의 사진은 마일즈를 꼭 닮았다…. “사나운 의붓아들과 항상 출타 중인 남편” 때문에 생긴 문제인 줄만 알았던 사태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전혀 다른 얼굴을 내비친다. 주인공 자신이 연루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상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급기야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판단하기 힘든 지경으로 치닫는다. 혼동스러워하는 주인공에게 마일즈는 말한다. “어느 쪽을 믿을 건지는 아줌마가 결정해야 한다고 봐요.” 아이와 어른의 관계가 뒤집힌 형국이다. 주인공은 결국 더 이상의 추론을 포기하기로 한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소설 말미에서 미성년자인 마일즈를 차에 태우고 낯선 숙소에 든 주인공은 마일즈가 묵은 방과 연결된 문을 잠근 다음 문 앞으로 옷장을 끌어다 놓고서야 침대에 든다.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소설 마지막 문장은 그러나 얼마나 강한 불안의 메아리를 울리는지.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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