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사진 최재봉 기자
김숨 지음/문학과지성사·1만6000원 김숨의 일곱번째 장편 <바느질하는 여자>는 전통 누비 바느질을 하는 여자와 두 딸의 이야기다. 소설이 시작되면 어머니는 두 딸 금택과 화순을 불러 바늘 하나씩을 내린다. 의발 전수를 통해 법통을 물려주는 불가의 전통을 닮았달까. 아직 학교에 다니기도 전인 어린 나이지만 금택과 화순은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특히 자신이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금택에게 어머니가 준 바늘은 한갓 바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운명은 얄궂은 것이어서 어머니처럼 차분하고 꼼꼼한 기질을 지닌 금택은 바느질 솜씨만은 어머니를 닮지 않은 데 반해 “화순은 어머니로부터 바느질 솜씨는 물려받았지만, 기질은 물려받지 못했다.” 소설은 금택과 화순이 사십대 초에 이르기까지 30년 남짓 바느질을 둘러싼 세 모녀의 애증의 세월을 좇는다. 금택이 대학 진학도 마다한 채 어머니 곁을 지키며 혼자서 어머니의 바느질을 흉내내는 반면 화순은 고등학교부터 인근 도시로 진학하고 대도시의 대학에 다니며 학생운동에 가담하는 등 한사코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그렇지만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수의를 짓고자 자매가 함께 바느질을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사람의 손은 마침내 하나로 포개진다. “1970년대 중반, 읍내는 한복 차림과 양장 차림이 혼재했다. 치마저고리에 쪽 찐 머리를 한 여자들과 나팔바지에 고데기로 머리를 배추처럼 부풀린 여자들이 섞여 돌아다녔다.” 원고지 2200장에 이르는 대작 장편 <바느질하는 여자>는 금택네 세 모녀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같은 세월을 산 이 땅 여인들의 풍속과 사연을 담은 소설이기도 하다. 독립하기 전 엄마가 일했던 한복 거리에서는 “누구 팔자가 더 기구한지 내기를 하듯 떠벌리는 여자들”의 신세 한탄과 소문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넘쳤다. 처자를 이북에 두고 월남해 다시 가정을 꾸린 남편, 청상, 의처증에 따른 폭력, 자식의 이혼, 치매와 죽음…. 기이할 정도로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 소설은 소설로 쓴 여성의 역사라 할 법도 하다. “잠자리들이 금택의 종아리 높이에서 방향도 없이, 헛바느질을 하듯 날았다. 땅에서 한 뼘쯤 들린 함석 대문 밑에는 지칭개와 바랭이 같은 잡초가, 뜯긴 실밥이나 거칠게 지은 매듭처럼 지저분하게 돋아 있었다.” 금택네 어머니의 꼼꼼한 바느질은 소설 쓰기를 닮았다. 조각보를 보며 떠올리는 금택의 상념은 그대로 소설 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도무지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색들을 한데 불러 모으고, 모은 색들이 다투지 않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느질이라고 금택은 생각했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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