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보 염상섭
김재용 원광대 교수 발굴해 펴내
횡보 염상섭(1897~1963)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완성자로 일컬어진다. <삼대> <만세전> 같은 소설을 통해 그는 시대의 핵심을 꿰뚫고 인간의 본질을 묘파했다.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과 서라벌예대 학장을 지내며 언론과 학계에서도 활동한 그가 아동문학 작품을 쓴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국문학자 김재용 원광대 교수가 발굴해 펴낸 장편소설 <채석장의 소년>(글누림 펴냄)은 횡보가 남긴 유일한 아동문학 작품이다. 1950년 1월부터 아동잡지 <소학생>에 연재되다 전쟁으로 중단되었으며 1952년 6월 평범사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횡보 연구자들도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1987년 민음사에서 나온 12권짜리 전집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진 <채석장의 소년>은 8·15 광복 뒤 만주에서 돌아온 전재민(戰災民) 가정이 서울에 정착하는 과정을 두 소년의 우정을 중심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규상은 비교적 잘사는 집 아이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 밑에서 지내고 있지만 학급 급장을 맡고 있으며 정의감과 인간애가 투철한 아이다. 그가 동무들과 축구를 하다 우연히 채석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힘든 노동을 하는 동갑내기 완식이를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완식이 어머니는 만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지만 지금은 집도 없이 방공호에서 지내며 아들의 ‘전학’ 비용을 마련하고자 돌 깨는 일을 하는 중이다. 완식이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규상이는 제힘이 미치는 한에서 도움을 주려 노력하며 결국 또 다른 동무 영길이 등과 힘을 합쳐 완식이의 전학 문제도 해결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게 된다.
이 소설을 발굴한 김재용 교수는 “<채석장의 소년>은 1948년 남한에서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보도연맹이 만들어지는 등 냉전적 반공주의가 지배하는 암울하고 엄혹한 상황에서 횡보가 소년소설이라는 우회적 방식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하려는 의도에서 쓴 작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만주국에서 돌아온 완식이와 서울내기인 규상이의 우정을 통해서는 민족적 통합에 대한 염원을,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앞날을 열어 간다는 점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설 말미에서 영길 아버지와 규상 아버지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서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바람을 엿볼 수 있다.
“아이들 중심으로 어른 독재가 아니신 걸 보니, 댁에선 민주주의를 단단히 실천하십니다그려.”
“암 그렇죠, 워낙은 가정에서부터 민주 정신이 실천돼야죠. 어린이의 의사와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 실천의 첫걸음이라구 나는 생각합니다만,(…)”
횡보의 따님 염희영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버지가 <채석장의 소년>을 연재하던 무렵 우리가 살던 돈암동 집 근처에 채석장이 있었다”며 “아침 산책길에 아버지가 분명 채석장을 지나셨을 것이고 그 경험이 소설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드물어서 우리 형제들도 어른용 책을 읽었는데 그런 우리를 위해 아버지가 <채석장의 소년>을 쓰신 것 같다”며 “그동안 동생과 나는 틈날 때마다 헌책방을 다니며 이 책을 찾았는데 찾지 못했다. 65년 만에 이 책을 다시 만나니 기쁘기 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채석장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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