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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여행 그것은 노래이자 예언이자 질병

등록 2015-12-24 20:55

잠깐독서
한밤의 지도
알리 바드르 지음, 김정아 옮김
실천문학사·1만3000원

정보는 넘쳐나고 모험은 사라진 시대, “미지의 대륙은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린 지금,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라크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소설가인 지은이 알리 바드르는 이런 의문을 품고 “사막과 바다에서 길을 잃고서도 끝까지 길을 개척하고 보존했던 위대한 이들의 기록”을 되짚어 길을 떠난다. 그의 발길이 향한 곳은 이스탄불(터키), 테헤란(이란), 알제(알제리), 아테네(그리스). 찬란했던 문명이 흔적만 남긴 채 스러졌거나, 식민지배와 독재를 경험한 곳들이다.

이스탄불에서 “격한 폭풍우의 장막을 걷어젖힌 공간에 열정적으로 흐르는 제국주의의 역사”를 본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를 떠올리고, 테헤란에선 이슬람 개혁과 민주주의·인권의 공존 방식을 고민한다. 알제에선 프랑스에 점령당해 프랑스화한 언어와 교육, 행정을 생각함과 동시에 “아랍화된 이들은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고 무관심과 주변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대목을 놓치지 않는다.

지은이는 여행은 “오래전부터 어느 장소에 산적돼 있는 의견을 지워버리는 것”이자 “새로운 시각과 인생의 영속적인 격렬함 그리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서 발견하는 것”이라는 답을 내린다. 하나가 다른 하나와 결코 같을 수 없는 “노래”이자 “예언”이자 “시를 통해 세상을 압도하는 본능적 속성”인 여행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도달하기 위한 ‘한밤의 지도’에 근접한다”는 것이다.

<한밤의 지도>는 200여 쪽밖에 안 되는 여행기지만 익숙지 않은 이름과 지명들이 등장하는 것과 더불어, 철학을 전공한 소설가답게 다소 현학적이고 몽환적인 문체 탓에 글이 ‘후루룩’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깃털 만년필에 잉크를 찍어 양피지 위에 한자 한자 눌러쓴 글씨를 읽듯,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다 보면 전혀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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