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노벨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죽기 1년 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 <카인>에서 성서 속 인물 카인은 하나님에 대한 상징적 살해를 시도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사라마구 마지막 소설 ‘카인’
구약 주요 일화들 뒤집어보기
하나님은 질투와 죽임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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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질투와 죽임의 존재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1만4500원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성경에 기록되었다. 그것도 그냥 살인이 아니라 피를 나눈 친동생을 죽인 패륜아로 지탄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숱한 문인 및 예술가 들의 동정 섞인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가 저지른 죄의 책임을 온전히 그에게만 지우기는 어렵다는 것이 동정의 근거. 그런 점에서 그는 신약성서 속 인물 유다와 비슷하다. 두사람 다 하나님 또는 예수님의 섭리를 증거하기 위해 살인과 밀고라는 죄를 짓도록 운명 지워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노벨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1922~2010)가 죽기 1년 전에 발표한 소설 <카인> 역시 카인의 처지에서 사태를 뒤집어 보고자 한다. 카인은 구약성서에 쓰인 대로 하나님이 자신과 동생 아벨의 제물을 차별한 데 대한 분노로 동생을 살해한다. 그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이마에 살인자의 표지를 지닌 채 세상을 떠도는 신세가 되는데, 이 대목에서 작가는 카인에게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 여행 능력도 부여한다. 그 덕에 카인은 구약의 주요 사건을 직접 목격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번제 시도, 소돔과 고모라, 욥의 수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황금소 숭배, 노아의 방주…. 여기에다가 카인이 태어나기 전,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 추방 사건이 일종의 전사(前史)로 등장함으로써 이 소설은 카인의 범죄만이 아니라 구약 전체를 아우르게 된다. 카인이라는 목격자의 눈에 비친 구약의 세계는 어떠했던가. 우선, 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건부터 들여다보자. 이들은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은 죄로 낙원에서 추방되지만, “원죄라는 개념의 첫번째 정의가 생겨나게 된 이 에피소드는 한번도 만족스럽게 설명된 적이 없다.” 무지가 아닌 지식과 지혜를 좇은 행위가 왜 죄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설사 죄라 해도 하나님이 미리 내다보았다면 문제의 나무를 아예 심지 않으면 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등의 논리적 근거를 통해 사라마구는 에덴동산의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논지가 카인의 형제 살해에도 적용된다. 형제의 제물을 차별함으로써 살인의 동기를 제공하지 않았느냐는 카인의 주장에 하나님이 “그것은 너를 시험하는 문제였다”고 답하자 카인이 다시 항변한다. “주께서 직접 창조한 것을 왜 시험한단 말입니까.” 카인은 더 나아가 “나는 주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아벨을 죽였습니다”라고까지 말하는데, 사라마구의 소설 <카인>은 “하나님을 증오하는 자” 카인의 목격담 형식으로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살해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이 몹쓸 놈아, 너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그 아이를 태우려는 거냐,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이야기로구나, 어린 양에서 시작해서 가장 사랑해야 할 바로 그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다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좇으려 하는 마지막 순간 그의 행동을 멈춘 것은 여호와가 보낸 천사가 아니라 카인이었다. 물론 사라마구의 소설 속 이야기다. 여호와가 보낸 천사는 도착이 늦었다. “오른쪽 날개에 기계적 결함이” 생겼기 때문. 어쨌든 영문도 모르고 죽을 뻔한 이삭이 비속 살해범이 될 처지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아버지에게 하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카인의 항변의 되풀이와도 같다. “도대체 무슨 하나님이 아버지더러 자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까. (…) 아버지, 저는 이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이 사건들뿐만 아니라 다른 구약 속 일화들에서도 거듭 확인되는 하나님은 성당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과 크게 다르다. 소설 <카인>에서 묘사되는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며, 정의 관념이 뒤틀려 있고, 사랑과 평화가 아닌 전쟁과 죽임의 하나님이다.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라고 작가는 쓰는데, 80대 중반 나이에 내놓은 마지막 소설에서도 기성 질서를 상대로 한 싸움을 멈추지 않은 사라마구의 노익장이 놀랍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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