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들꽃과 거문고와 더불어 울리라

등록 2016-01-07 20:28

시인 장석남. <한겨레> 자료사진
시인 장석남. <한겨레> 자료사진
시의 정거장
장석남 지음/난다·8000원

물의 정거장
장석남 지음/난다·1만원

시인 장석남의 산문집 두권이 나란히 나왔다. <시의 정거장>은 시 감상 글을 엮은 책이고 <물의 정거장>은 2000년에 냈던 같은 이름 산문집에 새 글을 보태 다시 낸 것이다.

<시의 정거장> 발간에 얽힌 사연이 곱씹을 만하다. 언제부턴가 다른 이들의 시에 짧은 감상문을 곁들인 ‘시 해설서’가 유행이다시피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번 책에는 시 원문은 없고 장석남 시인이 그 시들을 읽고 쓴 글 129편만 실렸다. 애초 장 시인이 쓴 시 감상문은 300편이 넘었다는데, 원문이 없이도 독립적인 산문처럼 읽을 수 있는 글들만 추렸다고 했다. 여기에는 또한 경제적인 까닭이 없지 않다. 현행 저작권법상 시를 전재하기 위해서는 시인과 출판사에 6만원과 3만원씩 모두 9만원을 내야 한다. 129편이라면 1161만원. 출판사로서는 부담 되지 않을 수 없다.

“울음은 혼자 우는 것이 진짜야. 울음은 호젓한 데에 가서 참는 울음이 진짜야. 울고 나면 조금은 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서, 울음 쏟아져나간 만큼의 품이 새로 생겨서 안에 들일 수 없던 것들도 안아들이지. 울고 나면 용서할 수 있지. 울음은 작은 들꽃들 곁 울음이 진짜야. 그것들이 같이해주거든.”

“이름 없는 들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별 경치도 볼 것 없는/ 그곳으로 나가/ 나는 풀빛 울음을 혼자 울 거야”로 시작하는 박재삼의 시 ‘들풀 옆에서’에 붙인 장석남 시인의 글이다. 선배 시인 시를 빼어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이 짧은 글 자체가 독립적인 산문시로 읽히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천양희 시인의 시 ‘물음’을 다룬 글에서는 시를 쓰는 이의 고통스러운 자부심이 보인다.

“시를 쓰는 일이 불행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삶이 버거울 때 희망을 노래하기는 어렵다. 이웃이 아프고 산천이 아프고 내가 아플 때 희망을 노래하기는 힘겨운 일이다. 시는 질투가 아닌 사랑이니까.”

<물의 정거장>에서 2000년 이후 새로 쓴 글들은 앞부분에 모았다. 서울 땅에 무려(!) 마당 지닌 집을 마련한 그가 그 마당에 정자를 들이고 봄꽃과 달빛과 술과 거문고가 어우러지는 풍류를 꿈꾸는 대목이 부럽다.

“어느 한가한 봄 저녁이 되면, 출입할 사람이 없는 날을 택해 문 닫고 술을 한잔 마련하고 달이 돋는 시간에 맞추어 거문고를 발목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당- 그 소리 멀리 가지 않으면 어떠랴. 정자와 꽃들과 바위와 달빛들과 같이 그 소리를 들어 속에 가지게 되리라.”

최재봉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