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진채·이경희·정태언·조현·허택 지음강·1만4000원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2008년이 다른 어느 해와 다르지 않았고, 앞으로 올 많은 날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 ‘다르지 않은’ 날들을 ‘다르게’ 써야 했다. 그러니까, 미세한 결을 포착해야 했다.” 소설가 양진채가 합동 작품집 <선택>에 쓴 머리말의 일부다. <선택>은 양진채를 비롯해 2008년에 등단한 다섯 작가의 중편 하나씩을 모은 책이다. 이경희, 정태언, 조현, 허택이 그들인데, “우리는 젊지 않은 몸으로 ‘신인’이라는 이름을 달았다”는 양진채의 말에서 보다시피 신인치고는 나이가 제법 지긋하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한데 엮었다. 또 다른 공통점은 2008년에 일어난 사건들을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숭례문 방화, 서해 기름 유출 사고, 촛불 집회(사진), 세계 금융위기, 4대강 대운하 소동…. 나열해 놓고 보니 꽤 굵직한 일들이 2008년 한 해를 훑고 지나갔다. 대체로 불행한 사건·사고들이었지만 작가들에게는 그만큼 쓸거리가 많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해 여름 광장은 들끓고 있었다. 미친 소가 일으킨 파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소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고, 거리는 촛불을 든 사람들로 채워졌다. 촛불이 광장을 점령하고 있을 때, 나는 한 발짝 물러서서 촛불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양진채의 ‘플러싱의 숨 쉬는 돌’에서 화자 ‘나’가 촛불 광장에 나간 까닭은 87년 6월항쟁 당시 짝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자가 속한 단체가 광장에서 행사를 열기로 한 것. 20년 전 학생 시절이나 지금이나 “간절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있었던” 여자는 그러나 갑작스러운 부고로 마지막 연락을 보내온다. 소설은 광화문 광장의 촛불 집회와 미국 뉴욕에 사는 괴짜 삼촌의 이야기를 포개면서 기억과 현실, 개인과 집단,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파고든다. 이경희의 ‘달의 무덤’은 태안 앞바다 섬 몽이도를 배경 삼아 기름 유출 사고를 다뤘다. 화자 ‘나’의 치매 걸린 시어머니는 사고 당시 목숨을 잃은 친구 막달이의 혼령을 떠나보내지 못하지만, 남편과 함께 펜션을 운영하는 화자는 “내 미래는 그녀와 개펄이 아니라 달펜션을 찾아오는 손님들”이라고 굳게 믿는다. 화자 부부의 펜션은 사실 막달이의 죽음 등 섬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금을 기반 삼아 들어선 것이었는데, 사라진 줄 알았던 막달이의 아들이 뒤늦게 나타나 제 몫을 요구한다. “평화롭던 바다가 순식간에 거대한 괴물로 변했다.” 정태언의 ‘성벽 앞에서-어느 소설가 G(지)의 하루’는 숭례문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로 한 작가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숭례문 주변을 맴돌며 소설에 대한 고민을 이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 허택의 ‘대사 증후군’은 금융 위기를, 조현의 ‘선택’은 4대강 사업을 각각 소재로 삼았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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