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서울에 문을 연 ‘김근태기념치유센터’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관련
‘신체의 기억’ 치유 종합보고서
상담부터 안구운동까지 안내
‘신체의 기억’ 치유 종합보고서
상담부터 안구운동까지 안내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2만2000원 <몸은 기억한다>는 미국에서 불과 1년 남짓 전에 나온 따끈한 책이지만, 벌써부터 “현대의 고전”이니 “정신의학의 바이블”이니 하고 점 찍는 이들이 많다. 외상(外傷) 후 스트레스 장애, 정신적 외상이라 얘기되는 트라우마 연구의 권위자요 치료의 개척자로 그 최전선에 30년 이상 몸담아온 베셀 반 데어 콜크(72·보스턴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의 노작이다. 그 핵심은 트라우마는 심리, 마음의 문제라는 세간의 통념을 부순 데 있다. <몸은 기억한다>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트라우마가 실제로 몸에 새겨진다는 점, 곧 뇌 영역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드러내고, 또한 기능이 떨어진 뇌를 다시 활성화시켜 “마음과 뇌, 몸”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음을 안내하는 데 있다. 트라우마를 뇌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통합적인 치료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책이다. “몸에는 비극적인 경험의 흔적이 남는다. 트라우마의 기억이 내장 감각기관으로, 가슴을 찢고 속을 뒤틀리게 하는 감정으로, 자가 면역 질환과 골격·근육계 이상으로 암호화되어 남는다. 마음, 뇌, 내장기관의 커뮤니케이션이 감정 조절에 성공하는 지름길이라면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에도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콜크는 1978년 베트남전 참전 군인을 만나면서 트라우마 치료에 발을 디뎠다. 80년대부터 트라우마센터를 열고 아동학대와 성폭력·전쟁·재해·사고 피해자 수천 명을 만났다. 트라우마는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게 했다. 트라우마 환자는 원인이 가해자에 있든 자기에게 있든 상관없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잘 맺지 못했다. 지은이 콜크가 들려주는 대로, 우선 그 역의 사례를 보자. 2001년 다섯살 아이 사울은 9·11 폭격을 눈앞에서 겪었다. 잔해와 재, 연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24시간 뒤 사울이 그린 그림에는 고층빌딩에 비행기가 추돌하고 화염 속에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건물 바닥 쪽에 동그란 원이 놓여 있었다. 그게 뭔지를 묻자 “트램폴린”이라 했다. 왜 거기에 그게 있냐고 묻자, “그래야 다음번에 뛰어내릴 땐 무사할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답했다. 아이는 다시 삶을 이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울은 재난에서 달아나는 능동적 행동을 했고 안전한 집에 도착하자 아이의 뇌와 몸에서 울리는 경고음은 잠잠해졌다.” 그러나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그런 사고 혹은 충격의 경험을 삶에 통합시키지 못하고 그 상황에 갇혀 버린다. 이들의 뇌를 스캔해 보면 뇌에서 감각을 인지하는 영역인 내측 전전두엽 피질에 아무런 활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콜크는 이를 “두려움에 대처하려 신체의 직관적 느낌을 전달하는 뇌 영역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법을 습득한 것”이라고 본다. 끔찍한 감각을 차단하기 위해 삶을 온전히 느끼는 기능마저 없애버린 것이다. 어떻게 트라우마에서 탈출할 것인가. 프로이트 정신분석이 주장하듯 트라우마 사건과 그 사건으로 발생한 여파를 모조리 기억해낸다고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트라우마 표본연구 환자 대부분은 상담과 대화 치료 과정을 통해 일관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트라우마 증상이 낫지 않았다. ‘성폭행범의 냄새’, ‘죽은 아이 이마의 상처’ 식으로 조각조각 파편나 있던 사건을 기억해내고 이야기하면서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과정이 회복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모든 환자가 그런 건 아니다. 그 기억의 담지자인 신체 회로의 회복 혹은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뇌 회로의 재연결, 타인과의 관계 재연결이다. 이를테면 합창과 체육·운동·요가·마사지·연극까지 함께 몸을 움직이며 즐겁게 참여하는 활동은 트라우마 치료에서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신체 회로 재연결을 위한 혁신적 치유기법의 대표적 예는 ‘안구운동에 의한 기억 재처리(EMDR)’와 ‘뉴로피드백’ 기법이다. 뇌는 어떤 정서적 혼란을 겪든 이를 회복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이런 정보 처리가 ‘빠른 안구운동이 벌어지는 수면’(렘수면) 상태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안구운동 기법은 잠자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깨어 있는 동안에 재현한다. 이 기법은 약물 치료보다 더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로피드백은 타인과 마주하여 대화하며 상대 얼굴을 쳐다보고 반응하는 원리를 차용한 뇌파신경 치료다. 이 책의 주인공은 투라우마 환자들이다. <몸은 기억한다>는 19세기부터 2014년까지 세계 정신의학과 심리학계의 트라우마 연구와 치료의 새 발견을 역사적으로 조망하고 그 한계와 혁신을 드러내는 종합보고서이자, 1960년대 의과대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공부와 치료 이력을 시간을 거슬러오르며 진솔하게 기록한 정신과 의사의 초상이자, 그 길에서 만난 환자들의 고통과 삶의 이야기다. 치료자와 환자는 물론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 상처와 기억의 행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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