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캐나다 작가 앤 카슨은 고전학자이자 시인 겸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빨강의 자서전>과 <남편의 아름다움>은 고전을 다시 쓴 작품이자 시 형식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빨강의 자서전>은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화살로 쏘아 죽인 빨강 괴물 게리온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카슨은 빨강 날개를 달고 태어난 소년 게리온이 두 살 연상인 아름다운 소년 헤라클레스를 상대로 펼치는 사랑과 실연의 이야기로 신화를 다시 쓴다. “사랑을 나눌 때/ 게리온은 자신에게서 아치를 그리며 멀어져 아무도 모르는 어두운 꿈속으로 들어가는/ 헤라클레스의 등뼈를/ 하나씩 천천히 만지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에게는 다른 연인이 생기고, 게리온은 죽음과도 같은 상처와 절망에 빠져든다. “게리온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라클레스는 단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그들 사이의 공간에 위험한 구름이 생겨났다./ 게리온은 다시 그 구름 속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갈망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검은 핏자국이 묻은/ 반짝이는 가시들이 눈에 선했다.”
<남편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남편에게 매혹돼 결혼했으나 불성실과 배신으로 이혼하기에 이른 여자의 이야기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와 메모 등에서 따온 구절들을 모티브 삼아 펼쳐지는 이 작품에는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그 무엇에도 충실하지 못했던/ 내 남편. 그럼 나는 왜 소녀 시절부터 우편으로 이혼 판결을 받은 늦은 중년의 나이까지/ 그를 사랑했느냐고?/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건 비밀이랄 것도 없다. 나는 아름다움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가 가까이 온다면/ 다시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확신을 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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