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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요양소에 있느니 차라리 범죄를 저지르겠다!

등록 2016-01-28 20:11수정 2016-01-29 11:29

스웨덴 소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감옥보다 못한 요양소의 처우에 분개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고자 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다. 사진은 은행 강도 할머니들을 등장시킨 한국 영화 <육혈포 강도단>(2010)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스웨덴 소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감옥보다 못한 요양소의 처우에 분개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고자 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다. 사진은 은행 강도 할머니들을 등장시킨 한국 영화 <육혈포 강도단>(2010)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창문 넘어 도망친…’ 뒤이은
‘감옥에 가기로 한…’ 번역출간
스웨덴산 노인명랑소설 2탄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1만4800원

스웨덴산 노인 명랑소설 2탄이 왔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스웨덴 작가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소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여러모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비교된다. 2013년 7월에 번역 출간되어 지금까지 58만부 정도 팔린 <…100세 노인>은 100살 생일에 양로원 창문을 넘어 탈출한 알란이 펼치는 모험을 다룬 일종의 피카레스크 소설. <…메르타 할머니> 역시 79살 할머니 메르타를 비롯해 여든을 전후한 노인 다섯이 국립박물관의 그림을 훔치거나 은행을 상대로 강도짓을 하는 등의 모험을 그린다. 절도와 강도, 살인 같은 심각한 범죄가 등장하는데도 어디까지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어조를 잃지 않는다는 점도 비슷하다.

“나이 많은 노인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이 날도둑놈들이 활개를 치는 사회에서 79세의 노인 메르타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뭐가 있겠는가? 현실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그대로 죽어 가든지 아니면 적응을 해서 살아가든지…. 메르타는 이제까지 늘 적응하는 타입으로 살아왔다.”

그런 메르타가 생각을 바꾼다. 일차적으로는 싸구려 음식과 외출 제약 같은 요양소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반발로, 더 나아가서는 노인을 대하는 사회 전체의 태도에 분개해 ‘혁명’을 일으키기로 한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본 감옥 다큐멘터리는 막연한 분노에 분명한 목표라는 날개를 달아 주었다. “저런 범죄자들이 우리들보다 더 잘 지내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식단과 외출 및 산책, 취침과 기상 자유 등 요양소보다 나아 보이는 감옥의 상황을 접하고 메르타와 동료들은 결심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자!’

처음에 노인들은 국립박물관에서 값이 나가는 그림 두 점을 훔친 뒤 박물관을 협박해 거액을 뜯어낸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요양소를 탈출한 노인들이 각자의 재능을 살린 협업 체계 아래 그림 도둑질과 돈 갈취에 성공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몸이 약하고 행동도 굼뜬 노인들이 젊은 박물관 직원들과 경찰들을 속이고 따돌리는 장면은 독자의 대리만족을 자극한다.

비록 완벽하게 계획한 대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목표한 바를 이룬 노인들은 자진해서 범죄 사실을 밝히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막상 교도소에 가 보니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이들을 기다린다. “여자와 남자는 각각 다른 방을 씁니다.”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에 옮기는 동안 짝이 맺어진 두 남녀 그리고 범행 뒤 거의 난생처음으로 연애 상대가 생긴 할머니 등 다섯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한다. 게다가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있는 교도소의 현실에 메르타와 동료들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감옥, 절대 오래 살지 말아야 할 곳이다.’

그러나 어쨌든 한 번의 범죄 성공과 감옥 경험은 노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6개월 정도 실형을 살고 나온 노인들은 스스로를 ‘힘을 얻은 노인들’이라 부르며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한다. 그것도 이번에는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완전범죄를. 그 과정에서 맛보는 긴장과 흥분은 여든 전후 노인들에게는 젊음의 보약과도 같다. “하루 범죄 한 건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

<…100세 노인>의 알란이 인도네시아 발리를 도피처로 삼는다면 <…메르타 할머니>에서는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노인들을 기다린다. 바베이도스행 비행기 안에서 메르타가 쓰는 공개 편지는 일종의 ‘노인 선언문’으로서, 코믹 어드벤처로 위장한 이 소설의 진지한 메시지를 담았다.

“모든 요양소의 관리자는 요양소 내에 자격을 갖춘 인원이 일하는 독자적인 취사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신선한 재료들을 사용해 직접 음식을 조리하여 공급해야 한다. (…) 정계에 입문하려는 자는 남자든 여자든, 적어도 6개월 동안 노인 요양소에 와서 일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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