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책세상·1만6800원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고 나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그 책을 다시 읽게 된다. 마지막 여섯 페이지 반, 특히 마지막 두 단락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과감하고 매혹적인 단언이다. 아예 읽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읽고 나면 다시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니. <위대한 개츠비>가 이런 작품이었던가. 1920년대 미국 졸부의 허망한 첫사랑 찾기 놀이로 이 소설을 이해해 온 독자라면 당황할 법도 하다.
비평가이자 언론인인 모린 코리건의 책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는 스콧 피츠제럴드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 고백’이다. 피츠제럴드의 삶과 소설의 관계, 글쓴이 자신의 경험과 감성, 여기에 언론인다운 취재를 결합해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펼친다. 딱딱한 비평문이라기보다는 촉촉한 문학 에세이에 가깝다.
지은이는 <위대한 개츠비>의 매력으로 우선 “시와 같은 힘찬 문체”를 든다. “피츠제럴드는 미국의 일상적인 언어를 살리면서도 시적인 문체로 고상하게 다듬어, 톰과 데이지 같은 부유하고 생각 없는 사람들이 실제 세계에서 얼마나 야비한지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권위를 깎는다.” 같은 맥락에서, 흔히 소비 문화에 대한 찬미로 오해되는 이 소설이 “계급을 다룬 미국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평생 세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생전에 정당한 문학적 평가도 받지 못했던 피츠제럴드 자신의 삶이 주인공 개츠비에게 투사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가장 미국적이자 반미국적인 소설”이라는 판단도 마찬가지. 성실과 노력으로 부와 명성을 획득한 개츠비의 여정이 ‘미국의 꿈’을 보여준다면, 첫사랑을 되찾는 데 실패하고 목숨을 잃은데다 사후에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그의 몰락은 이 소설을 “1920년대 끝자락에 일어날 국가적 ‘난파’에 대한 이야기”로 읽게 한다는 것.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함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 날(4월10일)이 <위대한 개츠비>가 서점에 나타난 지 정확히 88년째 되는 날이라 새기는 이 ‘개츠비 덕후’가 “절대 늙지 않는” 말들이라며 거듭 인용한 소설의 마지막 두 단락은 이러하다.
“개츠비는 녹색의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절정의 순간과 같은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한테서 달아났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내일은 우리가 더 빨리 달리고, 더 길게 팔을 뻗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맑은 아침에─/ 그래서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들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최재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