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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 춥고 딱해도 의뭉스럽게 살아가는 ‘응달 너구리’

등록 2016-02-04 20:11수정 2016-02-05 10:24

농촌과 농민의 삶을 다룬 소설집 <응달 너구리>를 낸 작가 이시백. “농촌 소설이라면 근대 문화유산 정도로 취급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300만명이 농사를 짓는 엄연한 농업 국가”라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농촌과 농민의 삶을 다룬 소설집 <응달 너구리>를 낸 작가 이시백. “농촌 소설이라면 근대 문화유산 정도로 취급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300만명이 농사를 짓는 엄연한 농업 국가”라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농민문학 맥 잇는 이시백
세번째 농촌소설집 출간
4대강과 천안함 등 비판도
응달 너구리
이시백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한국 소설 아니 한국 문학에서 농촌과 농민 삶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은 벌써 오래되었다. 신경림 시집 <농무>와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로 대표되는 농민 문학의 위대한 흐름은 어느 순간 종적 없이 끊겨 버린 느낌이다. 세기 전환기까지 이어지던 전성태와 김종광의 안간힘마저 시들해진 지금, 우직하리만치 농촌과 농민 삶을 부여잡고 있는 거의 유일한 작가가 이시백이다.

소설집 <응달 너구리>는 이시백의 앞선 단편집 <갈보 콩>(2005)과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에 이어 다시한번 농촌을 전면화한다. 수록된 열한 단편 거개가 농촌과 농촌 인근을 배경 삼아 그곳 사람들의 삶을 점묘한다.

“호수로는 열아홉이지만, 혼자거나 곧 혼자가 될 노인들만 지키고 있는 집뿐이니 인구로는 서른을 넘기지 못한다.”

‘봄 호랑이’의 무대 평성골은 오늘날 농촌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인다. 농사만으로는 힘들다며 부지런히 소를 길러 ‘모범 축산 농가’ 표찰까지 받았던 젊은 농사꾼은 치솟는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해 송아지들을 굶겨 죽이다가 제초제를 들이마시고, 또 다른 농민은 구제역 바람에 기르던 소를 땅에 파묻고는 보신용 개나 길러 파는 신세로 전락한다. “돼지 죽구 소 묻구 이젠 농민덜 파묻을 챔”으로까지 상황이 나빠졌지만 농민 권익을 지켜야 할 농협은 “먹고 죽을 제초제나 할인해주는 뇡협”으로 평판이 나빠졌다. 대처로 뜬 자식들은 유산에나 눈독 들이고(‘흙에 살리라’), 원주민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외지인들이 들어와 농업 대신 전원 생활을 꿈꾼다.(‘응달 너구리’)

‘기승전-종북’을 관운장 언월도 휘두르듯 써먹는 세태에 농촌이라고 예외일 리 만무하다. 아니, 북에 대한 병적인 관심이라는 점에서 ‘진종’(진짜 종북)이라 해야 할 종편 텔레비전의 영향에 취약한 주민 특성상 농촌이야말로 종북과 빨갱이 놀음의 최적지라 하겠다. “나라가 안정되랴믄 바닥 빨갱이부텀 말깜히 쓸어베려야 한대니께.” 자율방범대 완장을 벼슬로 여기는 인물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이웃을 덮어놓고 빨갱이로 치부하고(‘잔설’), 지리산 자락 움막에 세든 빨치산 출신 노인은 이장의 퇴거 압력에 시달린다. “사상 문제에는 워쩔 도리가 웂슈.”(‘저승밥’)

이시백 농촌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정치적 주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소설집 전체에 걸쳐 4대강 사업과 구제역 파동, 천안함 사건 등이 비판적으로 언급되며, 그 과정에서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촌것들은 돼지 썩은 물 퍼마시든 말든, 그저 제 밥상에 오를 삼겹살 떨어질까 걱정하여 부랴부랴 외국서 수입허라구 아우성치는 서울 것들”(‘백중’)

“말끝마다 북쪽에다 폭격허라구 악쓰는 것들 치구 군대 갔다 온 것들 드물다는 소리두 못 들어봤댜? (…) 막상 전쟁 나믄 젤 먼저 노스웨스트 비행기 잡아타구 미국 나가서 웂는 집 자식들끼리 대가리 터지두룩 싸우는 거 테레비루 들이다보믄서 ‘쥑여라, 쥑여랴’ 손뼉 칠 것들인 줄 안즉두 몰러?”(‘개 도둑’)

‘제2의 이문구’라는 별칭답게 능숙하게 구사하는 충청도 사투리가 풍자와 해학의 맛을 한껏 살린다. 역시 요즘 소설에서 보기 힘들게 된 토속적 비유와 순우리말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빨 빠진 강아지 언 똥에 달려들 듯이’ ‘물에 빠진 김에 발 뒤꿈치 묵은 때 벗긴다고’ ‘남의 제사상에 올린 어포로 해장국을 끓여먹을 인간’, 빕더서다, 씨식잖게, 앙살, 버력, 바더리, 배틀하다, 야젓잖다….

표제작 ‘응달 너구리’는 원주민을 침팬지 사촌쯤으로 여기던 퇴직 외교관 황정식이 어수룩해 뵈던 원주민 삼봉에게 된통 당하는 이야기다. 삼봉의 별명 ‘응달 너구리’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는 황에게 삼봉이 튕겨 주는 뜻풀이에 소설집 전체의 기조가 들었다.

“보기엔 영 춥구 딱혀두 그 나름으루 의뭉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을 응달 너구리라 헌다는디, 내야 뭐 의뭉스러운 꾀래두 낼 재주나 있나유? 그저 벤소깐에 세워놓은 묵은 빗자루쥬, 뭐.”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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