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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돌아온 노동소설가 이인휘 작품집

등록 2016-02-04 20:14

노동 소설가 이인휘. 사진 실천문학사 제공
노동 소설가 이인휘. 사진 실천문학사 제공
폐허를 보다
이인휘 지음/실천문학사·1만2000원

노동 소설가 이인휘의 귀환(<한겨레> 2015년 3월27일치 31면)은 개인적 상황과 문학 안팎의 환경 변화가 아울러 작용한 결과였다. 그가 노동 열사 이용석 평전소설 <날개 달린 물고기>(2005)를 내고서 오랜 침묵에 든 까닭이 노동문학에 대한 주·객관적 회의와 무관하지 않다면, 지난해 봄 중편 ‘공장의 불빛’을 발표하며 (노동)문학으로 돌아온 것은 새로운 노동문학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이인휘의 신작 소설집 <폐허를 보다>에는 단편과 중편 중간 분량쯤 되는 소설 다섯편이 묶였다. ‘공장의 불빛’에 자세히 나오지만, 원주 근교 식품 공장에서 주 6일 53시간 노동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글을 쓰는 그가 1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책 한권을 묶기까지 들였을 노고가 눈에 선하다.

<폐허를 보다> 수록작들에는 80년대 이후 노동과 노동운동, 노동문학에 매달려 온 작가 자신의 삶의 자취가 고스란하다. 특히 분량이 가장 긴 ‘시인, 강이산’은 이인휘의 개인사와 그의 동무였던 노동자 시인 박영근 그리고 1986년 구로 신흥정밀 파업투쟁 때 분신한 박영진 열사의 삶과 죽음, 여기에다가 80년 5월 광주의 상흔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두루 담았다. 주인공 강이산은 박영근을 모델로 삼았지만 구체적 이력과 행적은 ‘80년대적 전형성’에 맞추어 해체, 재구성되었다. 80년 광주항쟁 당시 형이 계엄군의 총에 희생됐다든가 그 자신 항쟁 마지막 날 도청에 남았다가 체포되었다는 등의 세부가 그러하다.

표제작 ‘폐허를 보다’는 ‘공장의 불빛’과 마찬가지로 핫도그와 감자떡을 만드는 식품 공장을 무대로 삼는다. 사장의 막말과 인격 모독에 사과를 요구하던 아주머니 노동자들은 사장이 오히려 해고 위협을 하며 강경하게 나오자 파업을 결의한다. 그중 한 사람인 주인공 정희는 젊은 시절 울산의 자동차 노조원 해민과 결혼하고 남편의 파업 투쟁에도 동참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의 배신으로 상처를 입은 남편은 노동 현장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하다가 먼저 세상을 떴고, 그 자신 파업을 결심한 정희는 울산으로 내려가 파업 투쟁의 상징과도 같았던 자동차 공장 굴뚝에 오른다. 그 시절 “굴뚝은 승리를 염원하는 희망의 상징이자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마지막 투쟁의 보루였”지만, 지금 힘들게 굴뚝에 오른 정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열뿐이다.

“더러운 음식을 만드는 걸 묵인하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돈 몇 푼에 매달린 인생.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공장 언니들.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존재에 대한 물음은 달아나버렸다.”

소설의 결론인즉 제목만큼이나 암담하지만, 작가는 애써 말하려는 듯하다. 절망의 나락을 정직하게 응시해야 가까스로 희망의 싹을 챙길 수 있는 것이라고.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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