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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변죽을 쳐서 복판을 울려라

등록 2005-10-20 15:49수정 2005-10-21 18:06

지난 16일 부산작가회의에서 기획한 제8회 요산문학제 행사의 일환인 ‘낙동강 뱃길을 따라가는 요산문학기행’ 참가자들이 낙동강 하류 을숙도 선착장에서 매에 오르고 있다. 부산작가회의 제공
지난 16일 부산작가회의에서 기획한 제8회 요산문학제 행사의 일환인 ‘낙동강 뱃길을 따라가는 요산문학기행’ 참가자들이 낙동강 하류 을숙도 선착장에서 매에 오르고 있다. 부산작가회의 제공
문학상? 지원대상? 모두 남의떡이오 지역문인들 ‘수도권 집중’ 성토 배려만이 답인가? “발딛고 있는 현실과 싸우라 싸움이 효과적일수록 보편성 얻는다” 김정한·현기영·이문구…주변부 상처로 세계사적 모순 팠다

커버스토리

지난 8월 초 민족문학작가회의(작가회의)의 인천 지회인 인천작가회의(회장 신현수)는 ‘문학 관련 지원제도에 대한 인천작가회의의 의견서’라는 이름의 문건을 발표했다. 작가회의 이사장을 수신자로 삼은 이 문건에서 인천작가회의는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문예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시행하던 문학 지원 프로그램이 지역문학을 소외시키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인천작가회의는 문예진흥원이 시행하는 ‘이 달의 우수 문학도서 보급사업’과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지원사업’ 등을 거론하면서 이 사업들이 △서울 중심으로 편중된 문학지형 속에서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의 문학적 편중현상을 심화시키고 있고 △지역 문예지가 심사에서 배제되고 있으며 △지원사업이 대부분 명망가 위주거나 기성의 문인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신진 작가가 새롭게 자라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미흡하다면서 “심사 기준의 재검토가 필요하”며 “심사 결과에 대한 객관적 판단자료를 제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천작가회의의 문건은 지역 신문에서 비중 있게 기사로 다루어지면서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문예진흥원 쪽은 인천작가회의의 문제 제기에 강력한 유감의 뜻을 밝혔고, 이에 따라 인천작가회의는 며칠 뒤 ‘해명 의견’을 내어 앞선 의견서 중 몇몇 강한 표현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인천작가회의는 문학지원 사업에 관한 의견서가 “사업의 본래 취지에 걸맞게 문학의 저변 확충을 위한 보다 세심한 심사와 운영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음을 밝히고 “이 제도가 기존의 한국 문학의 지형도를 그대로 확인하는 평면적인 사업으로 머물지 말기를 거듭 당부한다”는 견해를 곁들였다.

인천작가회의의 의견서는 사실을 잘못 적시하는 등 정교하거나 섬세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일부 표현을 철회하는 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그 취지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의견서를 작성한 쪽의 주장이다. 신현수 인천작가회의 회장은 “지역에서 아무리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도 중앙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소외감이 분명히 있다”며 “한국문학의 체질이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지역이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인천의 경우에는 특히 지리적으로 서울에서 가깝다 보니까 중앙도 아니고 지방도 아닌 채 웬만한 명망가들은 다 서울을 무대로 삼아 활동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인천작가회의의 의견서가 발표된 것과 비슷한 무렵에 서울 소재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들에게 장문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지역에서 문예지를 발행하며 문학 단행본도 내는 어느 출판인의 ‘하소연’이었다. ‘지역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만드는 잡지와 단행본을 중앙지에서 홀대하는 것 아닌가’ ‘책이 배달돼 오면 지역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쪽으로 치워 버리지 말고 꼼꼼히 들여다 봐 다오’라는 것이었다. 이 출판인은 “중앙의 언론뿐만 아니라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지원 단체, 수도권 서점 등도 지역 문학과 지역 출판물에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 문인과 출판인 들의 이런 항변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학과 출판 역시 서울과 수도권 집중이 극심한 것이 우리네 현실인 만큼, 지역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이들은 크건 작건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유수한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거나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일, 심지어는 문학상과 각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는 데에서 지역 문인들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식의 생각이다. “중앙에 있는 문인들끼리는 서로 자주 만나서 술도 마시고 그러는 가운데 잡지 원고 청탁과 단행본 출간 약속, 각종 심사에 관한 로비 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 문인의 말은 지역 문인 전체의 피해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들린다.


“중심부 타락…지역이 대안이다”

물론 반대 주장도 있다.

“과거처럼 직접 만나서 원고를 주고받는 아날로그 시대가 아닌데, 지역이라고 해서 특별히 차별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할 이유가 없다. 인터넷 전자우편과 핸드폰으로 지역은 물론 국가 간의 구분도 무의미해진 마당에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아닌가.”

역시 익명을 요한 한 수도권 문인의 반박이다. 지역에 살고 있지만 중앙 문단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또 다른 문인은 좀 더 비판적이다.

“있는 곳이 어디가 됐건 중요한 건 ‘자기’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지역 문인들 자신의 패배의식과 게으름이라고 본다. 각자의 문학관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중앙의 판단 기준은 상당한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지역문학의 기반이 튼실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역량 있는 이들이 중앙 무대에 진출하는 것 자체를 백안시해서는 곤란하다.”

지역문학의 이상과 현실, 당위와 실리 사이의 갈등은 예상 외로 심각하다.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의 고뇌와 불만은 이른바 중앙에 있는 이들은 짐작조차 힘들 정도로 크고 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역 문학과 문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려에서 답을 찾을 노릇도 아니다. 지역문학의 자생력을 갉아먹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없는가. 최근 출간된 지역문학 관련서에서 그 답을 한번 찾아보자.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의 저서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신생)이 그 책이다. 1982년 등단한 이래 부산을 기반 삼아 문학평론가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구 교수는 <신생>과 <오늘의 문예비평> 등 부산 지역 문예지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며 부산민예총 부산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구 교수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주변부에 사는 것이 힘겹거나 짜증스러울 때가 많다”고 솔직히 토로하면서도 ‘중심부 타락’이라는 명제를 포기할 수가 없었노라고 밝힌다. 자본의 개입에 의해 중심부가 타락한 만큼 “주변부 지역이야말로 새로운 가치와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으며 “중심부가 강제하는 보편주의로부터 벗어나 지역의 창조적 이념을 창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서 구 교수는 우선 이상적인 지역문학과 그릇된 ‘지방주의’를 구분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그는 △지방의 경험과 유산 그리고 기억들이 지닌 순수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비역사적 태도 △지방 스스로 문화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자립주의 △중심의 시선으로 지방을 계몽하는 지방주의가 다같이 문제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구 교수는 지역문학이 “그만의 특수성을 통하여 보편성의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른바 ‘전지구적 시각, 지역적 실천’이 지역문학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지역문학은 자기 땅에서 유배되어 있다.” 지역문학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문제와 대결해야 한다. 그 싸움이 효과적이면 효과적일수록 그 결과는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 전체의 문제 역시 해결하는 쪽으로 발휘된다.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모래톱 이야기> <오키나와에서 온 편지> 등의 소설을 통해 당대의 핵심 모순을 드러냈던 요산 김정한의 사례가 모범적이다.

김정한에 견줄 만한 또 다른 사례로 소설가 현기영씨를 들 수 있겠다. 제주 출신인 현씨는 중편 <순이삼촌>과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등의 작품을 통해 4·3과 이재수의 난, 잠녀항쟁 등 제주의 역사와 현실을 지속적으로 소설화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소설적 전략을 가리켜 ‘변죽을 쳐서 복판을 울린다’고 표현하곤 한다. 변방 중의 변방일 수밖에 없는 제주의 상처와 모순을 건드림으로써 한반도 전체의 핵심 모순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석영씨와 작고한 이문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얘기할 수 있다. <관촌수필>은 이문구 자신의 어린 시절 고향 얘기지만, 거기에는 6·25와 좌우 대립이라는 세계사적 모순이 개입돼 있다. 황석영씨의 <손님> 역시 마찬가지.

소재만 취하는 햔토주의 곤란

인천 출신으로 이 주제에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최원식 교수의 말을 들어 보았다. 구 교수가 ‘지방’이라는 말이 종속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가치중립적인 ‘지역’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데 반해 최 교수는 당당하게 ‘지방’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한다. 현실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개선점을 찾자는 것이다.

“21세기의 특징은 세계화가 지방화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른바 글로컬라이제이션(golcalization)의 시대 아닌가. 한국 작가들 역시 이중적 시선이 필요하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지방을 보기 위해서는 세계 차원의 눈이 필요하고, 세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의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피상적으로 소재만을 취하는 향토주의도 곤란하지만, 자기만의 관점이 없이 낯선 풍물을 늘어놓는 여행기 식의 소설도 곤란하다. 지방과 국가와 세계를 아울러 보는 복합적인 시선이 있어야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부산작가회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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