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21일 심포지엄 최장집·이병천·조희연 교수등 발표
‘대한민국 정체성’ 논란이 다시 시작됐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듯한 정당들의 이념 논쟁과 달리, 깊이 있고 체계적인 논쟁을 들여다보자. 이 말 많고 탈 많은 나라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참여사회연구소가 2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나절을 바쳐 이 질문에 답한다.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해방 6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연다.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역사와 좌표’가 주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진보정치연구소와 함께 한국 진보진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연구집단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기조 발표에 나선다. 민주주의 문제를 중심으로 해방 60년을 돌아본다. 특히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NLPD) 노선에 대한 재해석이 두드러진다. 애초 그 단어에 붙어있던 ‘-혁명론’의 꼬리를 떼면서 급진성·낭만주의 등을 밀어낸다. 대신 “한국의 역사로부터 생성된 핵심적 두 문제(민족과 민중)를 상호연관성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의 복원 가능성을 점검한다. 최 교수는 몇몇 저술과 발표를 통해 ‘NLPD’의 긍정성을 평가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한국적 해방이념인 ‘NLPD’의 문제를 다시 불러들일 필요가 있다”고 적극 강조하고 있다. 최 교수 나름의 돌파구 제시로 이해된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박정희 시기 ‘돌진적 산업화’의 다층적 양상에 주목한다. 지금껏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성장 담론의 허구를 파헤쳤다. 실증적 분석을 거쳐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힘입은 성장의 성과가 배당 등을 통해 누출되지 않고 재벌 자본의 형태로 축적”됐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재투자 이후 더 큰 이윤을 만들어 분배하겠다는 약속이 깔려 있다. 그러나 재벌은 “길들이기에는 너무 큰 괴물”이 됐고, 분배의 약속은 사라졌다. 이 교수는 ‘국가-재벌’ 동맹이 발행한 부도어음을 어떻게 추심하고 그 재발을 막을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세력의 ‘헤게모니 위기’를 지적한다. 60·70년대 산업화·근대화 세력이 80년대 들어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과 비교된다. 이는 87년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적 신계급사회’로 나아간 데서 기인한다.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계급적 불평등은 더 심화된 것이다. 조 교수는 계급 불평등을 중심으로 삼되 보다 넓은 국민대중을 포괄하는 ‘국민적 개혁세력의 재구성’을 제안한다. 핵심은 시장자유화에 맞서는 ‘공공성 담론’이다. 87년 이전의 ‘반독재’ 화두에 비교된다. 80년대부터 ‘실천적 전략’을 고민해온 조 교수의 새로운 좌표가 흥미롭다.
이밖에도 정용욱 서울대 교수는 해방 60년사를 두루 살펴보고, 홍기빈(신자유주의), 신정완(사회민주주의), 김상봉(공화주의), 박명규(민족주의), 오장미경(페미니즘), 홍성태(생태주의) 등이 한국 사회의 뼈대를 이루는 이념지향을 성찰한다. 종합토론에는 이들 외에도 임혁백(고려대)·장상환(경상대)·정대화(상지대)·조돈문(가톨릭대)·홍윤기(동국대)·홍세화 등이 참가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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