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랑 소설 <슈거 푸시>
이명랑(32)씨가 네 번째 장편소설 <슈거 푸시>(작가정신)를 내놓았다. ‘슈거 푸시’란 소설 속 주인공이 배우는 라틴댄스의 용어로 ‘서로의 손을 잡고 뒤로 갔다가 다시 밀착되는 동작’을 가리킨다.
주인공 소희는 두 돌이 조금 못 된 아이를 가진 스물일곱 살 젊은 주부지만, 67킬로그램의 몸무게만큼은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을 법한 명실상부한 ‘아줌마’다. 결혼 전만 해도 50킬로그램을 넘나들 정도로 날씬했던 그가 지금의 우람한 체구가 된 것은 일종의 자포자기의 결과였다. 소희로 하여금 자신을 포기하게 만든 ‘주범’은 다름 아닌 엄마. “아름답다거나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행위는 무엇이든지 대가리에 똥만 잔뜩 든 미친년들의 짓거리”(78쪽)라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그러니 소희가 어느 날 문득 백화점 문화센터의 광고지를 보고 라틴댄스를 배우러 다니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엄마에 대한 반역으로 이해될 법하다. 아닌 게 아니라 라틴댄스를 가르치는 선생은 “여자는 무조건 아름다워야 돼”(74쪽)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집안의 유일한 ‘여왕벌’로서 성장기부터 소희를 구박하고 억눌렀던 엄마, 그리고 장모와 죽이 맞아 아내를 부하처럼 다스리는 직업군인 남편은 소희의 권리와 자유를 말살하려는 연합군인 셈이다. 당연히, 소희의 라틴댄스는 그에 맞서 자신을 회복하기 위한 저항의 무기가 된다.
“거울 앞에 서서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똑바로, 뚫어지게 바라본다. 거울 속의 나에게 손바닥을 내민다. 거울 속에서 나의 손바닥이 나의 손바닥과 만난다. 거울 표면에 손바닥을 붙인 채로 팔을 옆으로 벌린다. 거울 속에서 이제, 나의 가슴이 나의 가슴과 겹쳐진다. 내가 나와 하나가 된다.”(90쪽)
춤을 배운다고 해서 현실의 질곡이 당장에 걷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와 해방이라는 춤의 정신을 놓치지 않는 한 언젠가 좋은 날은 올 것이다. 그 때까지는 “뒤꿈치로 음흉스럽게!/발끝으로 조심스럽게!/바닥에 볼을 비비며 은밀하게!”(219쪽)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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