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의 고통을 노래함-이명랑 소설 <슈거 푸시>
김근 첫 시집 <뱀소년의 외출>
젊은 시인 김근(32)씨가 등단 7년 만에 첫 시집 <뱀소년의 외출>(문학동네)을 묶어 냈다.
“항아리 같은 잠의 뚜껑을 열고 사내애는 깨어났다 낡고 낡은 잠 바깥엔 삼백예순 날 종일 비 내리고 빗방울 하나마다 부릅뜬 눈알들 추녀 끝 마당엔 여자가 온몸으로 눈알을 맞고 서 있었다 여자는 희게 젖고, 엄마 나는 저 눈깔들이 무서워요 무서워할 것 없단다 얘야 지느러미나 혓바닥이 내릴 날 있을 거다 저것들은 엄마가 죽인 아기들의 눈깔인가요? 얘야 저것들은 네가 무수한 날에 바꿔달 눈알들이란다 또로록 또로록 굴러다니며 검은자위들이 본 저 징글징글한 것들을 내가 다 봐야 한다고요? 보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얘야 너 같은 건 다 거짓말이란다”(<어제>)
시 <어제>의 앞부분은 이 개성 넘치는 시집의 매혹과 당혹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한 아이의 또는 한 시인의 환상적 탄생담에 해당하는 이 시에서는 빗방울들이 눈알이 되어 내리고, 항아리 같은 잠에서 깨어난 사내애는 그 눈알들을 무서워하지만, 그가 엄마라고 부르는, 아기들을 죽인 여자는 눈알 비말고도 무서워할 일은 얼마든지 많다는 말로 그의 불안을 덧칠한다. 압권은 인용부의 마지막 구절, “너 같은 건 다 거짓말이란다”에 있다. 보르헤스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이 세계에서 태어남은 거짓-태어남이고 적대적인 경험과의 마주침에 해당한다. <헤헤 헤헤헤헤,>라는 제목의 시에서도 뒤란의 시커멓게 빛나는 항아리들을 열어 본 늙은 어미는 “아기들의 몸 없는 머리를(…) 하나씩 뽑아들”고는 말한다: “언제 다 죽을래?”
이런 시적 정황을 가령 적대적인 모자관계 또는 불행한 가족사의 표현이라 이해하는 것은 순진하고도 곤란한 독법일 것이다. 시인이 포착하는 것이 불행과 적대감이라면 그것은 부모-자식 관계나 가족사를 뛰어넘는 훨씬 근본적인 차원을 겨냥한다. 탄생과 죽임, 교접과 부화, 뒤틀린 성장과 탈피, 사지절단과 식인(食人) 등이 난무하는 김근씨의 시들이 끔찍하거나 음울하기는커녕 자못 발랄하고 유쾌하게까지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오래된 자궁>이라는 시의 화자 ‘나’는 자궁에 도착한 정충으로 보인다. 그는 “내가 태어날 바다를 찾아서 왔는데” “정충의 부패한 찌꺼기들로 가득한 바다의 침침한 심연”에서 그는 “내가 왜 태어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어한다. 이 시에서 탄생의 과정은 팔과 다리와 머리와 몸이 차례로 떨어져나가는 반(反)-탄생으로 묘사되고,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흐흐 지겹게 나는, 또, 태어나는, 것이더란, 말이지”(박상륭 투로) 체념하고 만다. <삼국유사> 중 사복(蛇福)을 주인공 삼은 표제작은 시인이 그리는 탄생담이 불교적 윤회전생의 설화임을 알게 해 준다.
“어미이기도 하고 어미가 아니기도 한/아들이기도 하고 아들이 아니기도 한/암소이기도 하고 수소가 아니기도 한/이 질긴 슬픔의 끄나풀을 누가 끊을 것인가”(<뱀소년의 외출>)
독창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들이 가히 감각의 축제를 벌이다시피 하는 김근씨의 시를, 시집 해설을 쓴 평론가 황현산씨는 ‘고독한 판타지’라 규정한다. 김근씨의 고독한 판타지들은 얼핏 괴기스럽고 충격적인 외피를 둘러쓰지만, 몽정을 노래한 <강, 꿈>과 같은 아름다운 시를 보면 그가 언어와 이미지의 조작에 능한 시인임을 알게 된다.
“산과 들과 세상이 밝음과 어둠의 바깥에, 흐르지 않고/강인데, 누이야, 허옇게 물안개만 피어올라 몽글몽글,/자울거리는 시간하고 노닥노닥, 안개에 싸여 오두마니, 나,/어디 기척이나, 배곯는 밤부엉이 소리나 어디,/그저 한참을 앉아만, 나, 내가 참말 나인지도 모르게 앉아만,”(<강, 꿈>)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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