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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비평 정신과 가치를 부여잡고 버틴 세월 사반세기

등록 2016-02-18 20:08수정 2016-02-18 20:08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들이 17일 오후 부산 중앙동 신생인문학연구소에서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전성욱 편집주간, 편집위원 양순주·손남훈·박형준, 편집장 김무엽, 편집위원 김필남·최성희씨.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들이 17일 오후 부산 중앙동 신생인문학연구소에서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전성욱 편집주간, 편집위원 양순주·손남훈·박형준, 편집장 김무엽, 편집위원 김필남·최성희씨.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1991년 창간 비평전문지 ‘오문비’
봄호로 통권 100호 기록
‘부산’과 ‘비평’의 아름다운 결합
오늘의 문예비평 통권 100호
(2016년 봄호)

윤여일 외 지음
낯선청춘 펴냄·1만2000원

국내 유일의 비평 전문지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이하 ‘오문비’)이 봄호를 통권 100호로 낸다. 부산에서 나오는 이 잡지는 1991년 봄호로 창간된 뒤 두 호 합본호를 한 번 낸 것 말고는 사반세기 동안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발행돼 100호 고지에 오르게 됐다. 다음달 초에 선보이는 통권 100호는 ‘오문비와 나’ ‘문예지의 존재론’ 같은 특집으로 100호를 자축하며 의미와 과제를 짚었다.

<오문비>는 1991년 남송우, 구모룡, 박남훈, 황국명, 이상금, 정해조, 정형철 등 부산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들이 동인을 꾸려 출범했다. 이후 여러 차례 편집위원들이 바뀌는 중에도 남송우 부경대 교수는 2000년대 후반까지 편집인을 맡아 후배들을 이끌고 뒷바라지했다. 남 교수는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80년대 초 문예지들이 통폐합된 뒤 지역에서 무크지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비평가들이 정기간행물을 내기로 뜻을 모았다”며 “서울과 지역 사이의 심각한 문화 격차도 해소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비평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비평 전문지로 방향을 정했다”고 회고했다.

절박하고 타당한 취지에서 출발했음에도 100호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창간호를 낸 출판사는 ‘지평’이었지만 그 뒤 ‘책읽는사람’ ‘세종출판사’ ‘산지니’ ‘해성’ 등으로 발행 주체가 여러 번 바뀌었다. 최근 몇 해 동안 발행해 온 산지니마저 100호 발간을 앞두고 두 손을 드는 바람에 100호 기념호는 ‘낯선청춘’이라는 신생 독립 출판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상업성이 불투명한 비평 전문지를 지역에서 꾸리기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서울의 큰 출판사에서 나오는 문예지 편집위원들이 막강한 권력과 상징자본에 더해 적잖은 활동비로 보상을 받는 데 비해 <오문비> 편집위원들은 거꾸로 제 돈을 내가며 잡지를 지탱해 오고 있다. <오문비> 편집위원들은 회의비나 활동비를 받기는커녕 자신이 쓴 원고에 대해 고료를 받지 않음은 물론 잡지 한 호당 원고료 300만원 안팎도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부담한다. 편집 실무를 맡는 편집장도 50만원이라는 박봉으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는다. 잡지는 기본 부수 500부 정도를 찍는데, 그 제작비를 출판사가 댄다.

17일 오후 부산에서 만난 전성욱 <오문비> 편집주간(동아대 교수)은 “<오문비>의 경제적 토대는 문화예술위원회나 부산문화재단의 지원, 지역의 문화 관련 포상금, 영광도서를 비롯한 향토 기업, 치과의사 소설가 허택 선생을 비롯한 개별 문인들의 후원, 여기에다 편집위원들의 갹출로 이루어진다”며 “통권 100호라는 숫자에는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 온 우여곡절의 세월이 함축돼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여건에서도 사반세기 동안 비평 전문지를 발행해 온 저력은 무엇일까. 이 잡지 100호 특집에 글을 쓴 고봉준 경희대 교수는 <오문비> 100호 발행을 두고 “한국 문학사에서 반복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라 칭했다. 전 교수의 말이 이어진다.

“부산작가회의 회원 명단을 보면 비평가가 20명이 넘습니다. 다른 도시에 비해 평론이 우세하죠. <오문비>는 부산 지역에서 신진 평론가를 배출하는 통로 구실을 합니다. 동시에 지역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우리 문학과 문화 전반에 걸쳐 진보 담론을 모색하고 재구성하는 구실을 <오문비>가 한다고 자부합니다.”

창간 동인 남송우 교수는 “<오문비>를 버텨 온 힘 중 하나는 부산의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학이든 다른 영역이든 비평이 사라지면 그 영역의 근본 정신과 가치도 함께 사라지게 마련인데, 후배들이 힘들더라도 비평의 가치를 부여잡고 꾸준히 해 나가기를 바란다”는 덕담과 조언을 건넸다.

부산/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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