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사진 창비 제공
최정화 지음/창비·1만2000원 최정화(37)의 첫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에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출몰한다. 그들에게 세계는 지극히 위험하고 불안한 것투성이다. 2012년 등단작 ‘팜비치’의 주인공 남자는 “중년 여자들은 바람을 피우고 딸들은 시시껄렁한 연애를 하는 이 불량한 세계”에 맞서 있고,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여주인공은 “끝도 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평온한 현재를 위협하는 온갖 두려움의 요소들”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다. 불안하고 위협적인 것이 바깥 세계만은 아니어서, 최정화의 인물들은 자기가 만든 함정과 허깨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한다. ‘구두’의 여주인공은 가사도우미로 부른 여자한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며, ‘홍로’의 중년 남성은 아내 행세를 하도록 고용한 여자가 너무도 태연하게 거짓 연기를 하자 오히려 자신이 위축되고 주눅이 든다. ‘팜비치’와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주인공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외부의 위협이라는 것도 따져 보면 안에서 온 것이기 십상이다. 휴양지 호텔에서 열린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왼쪽 발바닥이 화끈거릴 정도로 감동을 느꼈고 연주가 끝난 뒤에도 발을 절뚝이면서 “마치 세상에 저 홀로 이단의 신앙을 가지게 된 자처럼 외로웠다”던 주인공이, “반짝이는 작은 유리조각이 살 안쪽에 깊이 파고들어 있었다”는 사태의 진상을 확인하는 ‘팜비치’의 결말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해와 강박이 안정된 세계를 무너뜨리고 관계를 파탄에 빠뜨리는 이야기라면 표제작에 해당하는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와 ‘틀니’를 들 수 있다. ‘지극히 내성적인…’에서 자신의 방 하나를 유명 작가의 집필실로 내주었던 시골 여자는 작가의 책이 나온 뒤 열린 북콘서트에 간다. 작가가 제 집에서 원고를 쓰는 동안 돈독한 우애를 쌓으며 교감을 나누었다고 생각한 여자는 막상 책이 나온 뒤 태도가 바뀐 듯한 작가가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당신에게 책을 내밀게 될지 종이칼을 내밀게 될지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틀니’에서 사고로 틀니를 하게 된 남편에게 집에서만은 틀니를 빼놓고 편히 지내라고 권유했던 아내는 막상 남편의 틀니 없는 얼굴에 혐오감을 느낀 나머지 치명적인 파국을 불러오기에 이른다. 이 작품의 결말이 비교적 투명한 반면, 임신한 열다섯살 딸의 아버지 시점을 택한 ‘타투’, 허영심에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서 남편과 사이에 강이 파이게 된 여자가 나오는 ‘파란 책’, “나이 들어서 여자 돈이나 노리는 사기꾼”이라는 말을 듣는 남자를 주인공 삼은 ‘대머리’ 등은 한두마디로 요약하기 힘든 복잡미묘한 불안의 느낌과 더불어 마무리된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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