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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상처와 고통 연결고리 삼아 또다른 가족 일군 사람들

등록 2016-02-25 20:06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을 낸 작가 윤대녕. “나는 내게 가장 절박한 방식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해 왔다”면서도 “나이도 들고 사회도 바뀌면서 내 소설의 색깔 역시 변하리라는 막연한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을 낸 작가 윤대녕. “나는 내게 가장 절박한 방식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해 왔다”면서도 “나이도 들고 사회도 바뀌면서 내 소설의 색깔 역시 변하리라는 막연한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윤대녕, 11년만의 장편 발표
‘난민’과 ‘유사가족’ 주제 담아
“나 나름 리얼리즘 추구해왔다”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피에로들의 집>은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이후 윤대녕이 11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2000년대 초 2년간의 제주 살이 흔적이 <호랑이는…>에 담겼다면, 그 뒤 작가의 신상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간 망설였던 교직(동덕여대 문예창작과)을 받아들여 올해로 9년째를 맞았다.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다 보니 집중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은 방학 동안으로 제한되었다. 방학이면 그는 노트북을 들고 원주 토지문화관이며 연희문학창작촌 등을 전전했다. 학교에 들어간 뒤 그가 단편집 <도자기 박물관>과 산문집 두 권을 냈을 뿐 오랫동안 장편소설을 쓰지 못한 것이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피에로들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이 소설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한 게 2014년 여름이었다. 첫회 원고를 보내고 출판사로부터 교정쇄를 받아 읽던 중 세월호 사태를 만났다. “적어도 두어 달 동안은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까지 거세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윤대녕은 말했다. 24일 한겨레신문사 6층 카페 ‘짬’에서였다. 힘들게 1년에 걸친 연재를 마쳤다. 연구년을 얻어 지난해 1월 말부터 1년간 캐나다에서 지낸 게 소설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피에로들의 집>은 자신이 오래 관심을 지녀 온 ‘도시 난민’과 ‘유사 가족’ 주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그는 밝혔다. 서울 성북동 4층집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거주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연극계에서 밀려나고 연애에도 실패한, 전직 배우 겸 극작가인 알코올중독자 김명우가 집주인 ‘마마’의 제안으로 이 집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즈음의 내 인생이란 비 내리는 아침에 난데없이 유실물 처리장으로 끌려간다 해도 달리 불평이나 저항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소설의 첫 문장이 이러하거니와, 집에 들어오고 보니 명우의 절망이란 나머지 입주민들 앞에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사소해 보인다. 마마의 조카인 다큐멘터리 작가 김현주, 교사 출신 사진작가 박윤정, 대학 휴학생 윤태와 고등학생 정민이 그들인데, 마마와 현주를 제하고는 핏줄로 엮이지 않은 이들을 한데 묶는 것은 극도의 슬픔과 절망이라 할 수 있다. 가족을 잃거나(정민) 윤간을 당한 연인의 자살을 겪은 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거나(윤태) 이혼 뒤 세상의 시스템 바깥으로 뛰쳐나갔거나(윤정)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성장해 지금에 이른(현주) 이들의 사연을 차례로 알아 가며 명우는 어느덧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명우만이 아니라 나머지 구성원들 역시 동료 입주민을 가족처럼 여기며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자 하는데, 이 유사 가족을 가능하게 한 것이 “난민을 거둬 보살피는 대모 같은” 마마의 존재다. 특히 경제적 무능력자에 가까운 남자들이 주거와 끼니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마의 경제력인 셈인데, 전쟁이 나던 해 태어났고 사채와 주가조작, 돈세탁, 차명계좌 따위로 자본을 축적했다는 점에서 마마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인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마마가 지탱하는 유사 가족은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소망이 투영된 이상향에 가깝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주인공들의 사연과 아픔은 개별적이지만 그 바탕에는 사회적 재난이라 이를 만한 추세 또는 현상이 자리한다. 윤태를 괴롭히는 악몽이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세월호 사고만의 얘기가 아니다. 기성 세대의 뻔뻔함과 탐욕, 누구라 할 것 없이 공유하는 경쟁심과 적대감, 명우의 연인을 괴롭힌 연예계의 스폰서 시스템과 갑질…. 작가는 “지나치게 훼손된 존재들만 등장시킨 게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소설적 상상력보다 더한 일들이 태연하게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더라”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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