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성동(사진 가운데)이 1일 낮 서울 성북동 수연산방에서 이태준기념사업회(대표 안재성·왼쪽)가 주관하는 제1회 이태준문학상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1회 이태준문학상 소설가 김성동
남로당 다룬 단편 ‘민들레꽃 반지’
“상허 문학정신에 가장 닿아” 평
남로당 다룬 단편 ‘민들레꽃 반지’
“상허 문학정신에 가장 닿아” 평
“상허는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일컬어지지만, 그의 문학은 중음신 문학입니다. 남에도 북에도 머물지 못한 채 여전히 금기의 쇠울짱에 막혀 떠돌고 있으니까요. 이번에 이 중생이 받게 된 상이 남북 일통(=통일)의 광장으로 상허 문학을 불러오는 첫 발자국이 되기를 비원(悲願)합니다.”
소설가 김성동(69)이 제1회 이태준문학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3·1절 97돌인 1일 낮 서울 성북동 수연산방에서 열린 시상식에서였다. 수연산방은 중편소설 ‘해방전후’와 글쓰기 교본 <문장강화>의 작가 상허 이태준(1904~?)이 1930년대부터 1946년 월북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지금은 상허 손위누이의 외손녀 조상명씨가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기 양평 청운면 자택에서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한 김성동은 혈색도 좋고 목소리도 짱짱했다. 의사의 경고를 받은 뒤 ‘주초’(술과 담배)를 끊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상허 선생의 이름을 단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어떤 운명의 끈 같은 것이었다”며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휘문고보에서 퇴학당한 상허와 역시 고교(서라벌고)를 중퇴한 나는 고교 중퇴로서 학력이 거의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등단 이후에도, 남로당 간부로 전쟁통에 희생된 부친으로 인한 연좌제 때문에 겪은 차별과 고초를 돌이킨 그는 유난히도 자신과 인연이 닿지 않았던 문학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저는 1983년 모 잡지에서 만든 문학상에 내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거부한 뒤로는 어떤 문학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중생이 보기에는 함량이 떨어지는 작가와 작품도 이런저런 문학상을 잘도 받던데, 이 넘쳐나는 문학상 공해 세상에서 왜 나만 문학상을 받지 못하나 궁금해하기도 했지요. 내가 쓴 소설의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가, 금기의 영역인 좌익쪽 인물들을 그려서 그런가, 혹시 소설가 명단에서 이름을 지워버렸나, 내가 쯩이 없어서 그런가, 별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존경하는 상허 선생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을 받게 되니 그런 아쉬움이 싹 가십니다.”
제1회 이태준문학상 수상작인 김성동의 단편소설 ‘민들레꽃 반지’는 작가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과 구순의 어머니를 등장시켜 한국 현대사의 금기라 할 남로당과 전쟁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상을 주관하는 이태준기념사업회(대표 안재성)는 “김성동은 이 작품 속에서 아직 제 이름을 얻지 못한 우리 역사의 한 장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또한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살린 문장으로 이태준의 문학 정신에 가장 닿아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의 밑절미가 이태준이 산 삶과 맞닿아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상허 평전인 <실종작가 이태준을 찾아서>(2015)를 쓰고 내처 지난달 중순 이태준기념사업회를 출범시킨 작가 안재성(56)은 “이태준은 일제에 부역하는 글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북 뒤에도 김일성 우상화에 문제 제기를 한 유일한 작가였다”며 “그 때문에 결국 북에서도 숙청당했지만, 강단 있는 선비 기질과 우리말글에 대한 사랑, 서민에 대한 애정 등은 후배들이 귀감으로 삼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상허의 조카(여동생의 아들)인 김명렬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를 비롯해 시인·소설가·평론가 등 문인들과 각계 인사 50여명으로 이루어진 후원회와 함께 상허의 고향인 강원도 철원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오고 우리 말과 글에 관한 학술대회를 여는 등의 후속 사업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후배 소설가 하명희·최용탁과 시인 윤중목·임성용·최명진, 역사학자 임성옥 한국외대 강사, 조각가 송필 등 20여명이 참가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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