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에 지어진, 도시 중심부를 감싸며 말굽 모양으로 펼쳐진 운하는 아직도 ‘자유 도시’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책세상 제공
마리화나, 안락사, 성매매 합법화
‘암스테르담의 자유’ 1천년 역사
자유는 끝없이 싸워 지켜야 할 가치
‘암스테르담의 자유’ 1천년 역사
자유는 끝없이 싸워 지켜야 할 가치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
러셀 쇼토 지음, 허형은 옮김
책세상·2만3000원 ‘네덜란드’(Netherlands)는 어원상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 이 나라를 비롯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까지 포함하는 북해 연안 저지대는 유럽 북부 지대를 흐르는 큰 강들이 바다로 빠져들어가는 길목이다. 초기 인류는 1100년 무렵부터 이 일대 질퍽한 늪지에 제방을 쌓고 토탄 습지에 수로를 파는 식으로 땅과 물을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한 세기 뒤에는 해수의 범람을 막고자 암스털 강에 댐을 건설했으니, 오늘날 암스테르담의 중심을 이룰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이름 자체가 된 ‘암스텔레담머’(Amstelredamme)였다.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미국 역사 저술가 러셀 쇼토의 2013년작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은 암스테르담의 이런 출발에 주목한다. 마리화나가 허용되고 성매매가 합법이며 세계 최초로 동성 커플이 결혼식을 올린 이 도시가 자랑하는 자유정신의 바탕에 바다와의 싸움이라는 기원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었던 장원제도가 네덜란드에서는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네덜란드 땅 대부분이 바다나 늪지를 개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힘을 모아 제방을 쌓고 수로를 만든 농민들은 그렇게 해서 생긴 육지를 공평하게 나누었다. 토지의 개인 소유 개념이 일찍부터 발달한 것이다. 유럽 다른 나라에서는 귀족이나 교회가 땅을 소유하고 관리한 반면, 1500년 무렵 암스테르담이 포함된 홀란트주에서는 “단 5퍼센트의 땅만 귀족이 소유했고 농민 소유의 땅이 무려 45퍼센트에 달했다.” <…암스테르담>은 1100년 무렵부터 현재까지 암스테르담의 역사를 종으로 훑어 내려오면서 이 도시의 표지와도 같은 자유주의 정신의 연원과 흐름을 좇는다. 가톨릭 신부의 사생아로 면죄부를 비롯한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공격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1469~1536), 초상화와 자화상에서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힌 화가 렘브란트(1606~69),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고 신은 조물주가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 주장한 스피노자(1632~1677), 동인도 식민지 경험을 담아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을 이끌고 피식민지 주민들의 독립 투쟁을 촉발한 소설 <막스 하벨라르>(1860), <안네의 일기>로 세계인을 울린 안네 프랑크(1929~45) 그리고 성매매와 동성 결혼, 안락사를 모두 합법화시킨 2000년의 법안 통과까지 1000년 가까운 역사가 포괄된다. 지은이는 딱딱한 연대기식 기술을 피하고 인물과 스토리 중심 서술로 책읽기의 재미를 돋운다. 가령 렘브란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그는 렘브란트의 가정부이자 나중에 불륜 상대가 되는 헤이르티어 디르크스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의 주인공 니콜라스 튈프 박사 이야기로 한껏 우회한다. 번역본으로 500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은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추출한다기보다는 흥미로운 옛이야기를 듣는 심정으로 느긋하게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한때 바다였던 지대에 세운 집들이 다시 물에 잠기지 않도록 모두가 협력해야 했고 그래서 협동의 윤리가 뼛속까지 박힌, 다름에 대한 관용이 이데올로기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의 태도”가 암스테르담 자유주의의 기원을 이루었음은 분명한데, 그 경우에도 자유와 관용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싸워 얻고 지켜야 하는 가치라는 사실 또한 지은이는 강조한다. 흔히 하는 오해와 달리 “네덜란드 사람들은 원래 뼛속 깊이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관용과 자유가 보장되는가. ‘헤도헌’(gedogen)이라는 개념에 지은이가 주목하는 까닭이다. “엄밀히는 불법이지만 공식적으로 용인되는 것”을 뜻하는 이 말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허용하자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지은이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며 쓴 이 책은 어린 아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동네를 한바퀴 돈 다음 아들을 보모에게 맡기고 프리다 멘코라는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프리다는 안네 프랑크의 소꿉친구였으며 안네와 마찬가지로 나치 치하 암스테르담에서 2년가량 숨어 지내다 발각되어 수용소로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물론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세계인에게 일깨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오히려 이 책이 나치에 대한 협조라는 어두운 역사를 덮는 구실을 한다며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암스테르담에 1년밖에 머무르지 않았던 빈센트 반 고흐는 이 책에 짧은 삽화처럼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그의 동생 테오의 증손자가 이슬람 문제에 눈감는 다문화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다가 이슬람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죽은 2004년 사건은 자유와 관용의 복잡한 맥락에 다시금 눈길을 주게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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