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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비평의 인문문화적 가치 옹호와 공공성 강조 ‘외길’

등록 2016-03-10 20:16

첫 책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개정판을 22년 만에 내고 9일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만난 도정일 교수. “지금으로서 제1의 목적은 건강 회복”이라며 “여름까지 건강이 나아지면 가을쯤에는 책을 한 권 더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첫 책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개정판을 22년 만에 내고 9일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만난 도정일 교수. “지금으로서 제1의 목적은 건강 회복”이라며 “여름까지 건강이 나아지면 가을쯤에는 책을 한 권 더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늦깎이 비평가 도정일 첫 책
‘시인은 숲으로…’ 개정판 출간
‘작가세계’ 도정일 특집도 나와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도정일 지음/문학동네·1만4800원

작가세계 2016년 봄호
도정일 외 지음/작가세계·1만5000원

1994년에 나온 도정일 비평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50대 초에 평론을 쓰기 시작한 늦깎이 비평가의 이 첫 책은 평론집으로는 이례적으로 1만부 판매고를 올렸고, 교보문고의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1990년대의 책 100선’(1999), 한국일보 주관 ‘우리 시대의 명저 50’(2007) 등으로 꼽혔다. 비평의 대중적 친숙화, 비평의 사회적 공공성 강조, 당대 위기 상황에 대한 비평의 사유와 성찰 제시 등이 사건의 배후로 꼽힌다.

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 비평의 가장 큰 형식적 특징은 전문 용어와 맥락을 최소화하고 구어투를 방불케 하는 평이한 문장으로 독자와 소통하려는 태도를 들 수 있다. “지렁이가 날개 달고 등천할 궁리를 해보는 것과 진배없는 허황된 생각” 식의 거침없는 문장은 비평 글쓰기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혔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밤 숲에 머물러’에 빗댄 표제 평론에서 도정일은 인간의 감성과 사유 체계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한 생태 환경의 변화를 음울하게 짚는다. “지금의 독자는 눈 내리는 숲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산성눈 내리는 지금 이 세계의 어느 숲이 아름다울 것이며 누가 그 숲에 취해 발길을 멈추는가?” 문학이 생태계의 안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간의 복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생태 위기를 포함한 인간 삶의 위기에 맞서기 위한 ‘무기’로서 인문적 사유의 중요성을 그는 강조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비평의 인문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인간성 파괴에 맞서서 인간의 품위와 자유를 지켜낼 ‘인문문화적 가치들’을 옹호하는 비평적 작업”을 그것은 가리킨다. <시인은 숲으로…> 개정판 출간에 맞추어 그를 주인공 삼은 <작가세계> 봄호 특집 대담 제목 역시 ‘‘비평의 인문학’을 위하여’로 되어 있다.

<작가세계> 특집은 박광성 주간과 나눈 대담과 도정일의 글 두 편 그리고 이영준·이승렬·김민웅이 쓴 작가론 등으로 이루어졌다. 22년 전 민음사 편집주간으로서 <시인은 숲으로…>를 출간한 이영준 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초판 출간 당시 지은이가 세 쪽짜리 서문을 쓰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도 교수의 또 다른 늑장 부리기 사례를 들려준다. 하와이대 미국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통과시킨 뒤에도 참고문헌을 달고 주석을 정리하는 마무리 작업을 끝내지 못해 결국 최종 학위 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사건’이 그것이다.

초판 서문에서 도 교수는 1995년부터는 여러 ‘저술’을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라며 독자들에게 “내가 다시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채찍질해주”기를 주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는데, 그것이 꼭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이라는 단체를 통한 독서 운동,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로 대표되는 대학 교양교육 혁신 같은 사회적 실천이 저술가로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수백편에 이르는 신문 칼럼 일부를 수습한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가 책으로 묶인 게 2014년 3월이었다. 역시 원고는 완성된 상태로 그의 퇴고를 기다리는 ‘근간’ 예정 도서만도 최소 네 권에 이른다.

정년퇴직 뒤에 다시 학교의 부름을 받아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으로 봉직했던 그는 건강이 나빠지자 지난해 대학장직을 그만두었다. 바쁜 일들이 줄어들었으니 역설적으로 책 쓸 시간은 많아진 셈이다.

9일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만난 도 교수는 “문학은 공감(empathy)의 공동체”라며 “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의 공존의 정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문학의 가치와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책을 다시 내느라 예전 원고를 읽어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제 관심사는 여전한 것 같아요. 비평의 사회적 기능, 비평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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