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천문학’ 편집위원 총 사퇴

11일 주총서 다수 문인주주들 퇴장
1, 2대 주주들 주요 결정 밀어붙여

편집위원들 "역사적 정체성 부정" 반발
새 경영진 "경영난 무책임...변화 필요"
내홍 속 5월 하순 여름호 발간도 불투명

진보적 문학 계간지 <실천문학>을 내는 실천문학사가 내홍에 휩싸였다. 지난 1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김남일 대표이사(소설가) 등 문인 주주들이 퇴장한 가운데 소수 대주주들이 신임 이사진과 대표이사를 선임한 데 이어 <실천문학> 편집위원 6명 전원이 16일 사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김원, 김정한, 김종훈, 서영인, 장성규, 황인찬 등 <실천문학> 편집위원 6명은 16일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을 사퇴하며’라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서 편집위원들은 “3월11일에 있었던 주식회사 실천문학사의 주주총회는 1980년부터 시작된 계간 <실천문학>의 역사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몇몇 대주주에 의해 계간 <실천문학>이 주식회사법을 기준으로 하여 출판사 경영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그들의 ‘배당금’을 침해하는 ‘계륵’으로 규정되었다”고 개탄했다.

성명은 “주식회사 실천문학사가 본래 정신과는 정반대로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오직 ‘주식 표 대결’로 그 정체성이 결정되는 상황”을 거론하며 “자본의 논리에 의한 소수 대주주의 독점적인 출판사 운영과 계간 <실천문학> 편집권의 장악”에 우려를 표했다. 편집위원들은 “2016년 3월11일의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계간 <실천문학>이 지향했던 대안적 사유와 문학적 형상화의 변증법적 결합을 위한 지난 36년간의 고난한 작업이 쓰라린 패배로, 아니 어이없는 희극으로 종결되었”다며 편집위원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11일 열린 실천문학사 주주총회에서는 6500주(액면가 3250만원)를 지닌 2대 주주 한의사 윤한용씨가 7600주(액면가 3800만원)를 보유한 1대 주주 시인 이영진의 위임을 받아 이사진을 개편하는 등 주요 결정을 밀어부쳤고 김남일 전 대표와 편집자문위원 등 다수 문인 주주들이 그에 항의해 주총장에서 퇴장했다. 신임 이사로는 이영진 시인과 윤한용씨 그리고 공광규 시인이 선출되었으며 이 가운데 이영진 시인이 대표이사로 지명되어 14일부터 출근하고 있다.

편집위원들이 전원 사퇴함에 따라 5월 하순으로 예정된 <실천문학> 여름호 발간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서영인 편집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편집위원 모두가 사퇴한 만큼 여름호 제작에 간여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여름호 제작 문제 등 이번 사태의 후속 조처를 논의하기 위해 편집위원들이 18일 모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영진 실천문학사 신임 대표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출판사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방도는 없이 편집권 독립만 내세워서는 곤란하다”며 “출판사 경영과 잡지의 생명력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고민 끝에 대표이사 직을 맡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실천문학>을 내는 데 순 제작비만 1년에 6400만원 적자가 나고 인건비와 경상비를 포함하면 연 1억 가까운 결손이 발생하는데도 그에 대한 대책이 없다. 대표이사를 맡고서 확인해 보니 밀린 인세가 2억원이 넘고 회사 잔고가 바닥이라 제작비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선은 철저한 내핍 경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표이사 봉급도 받지 않을 생각이고 사무실도 더 작은 곳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실천문학사가 공적 측면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주주들의 권한 행사를 막고 소수 문인들이 대표와 이사진을 계승하는 기존의 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대주주라고는 해도 내가 이 출판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고, 필요하다면 내가 가진 주식을 다 나눠주겠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