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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최악의 날은 끝날 것이다…가난한 자들이 함께할 때!

등록 2016-03-17 20:22

작가 자크 타르디는 시위 장면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모습을 전진 배치했다. 원작자 장 보트랭은 “(파리 코뮌 당시) 여성의 등장과 그녀들의 정치활동, 반란에 대한 적극적 참여는 묵살되었다”고 밝혔다. 서해문집 제공
작가 자크 타르디는 시위 장면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모습을 전진 배치했다. 원작자 장 보트랭은 “(파리 코뮌 당시) 여성의 등장과 그녀들의 정치활동, 반란에 대한 적극적 참여는 묵살되었다”고 밝혔다. 서해문집 제공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민중의 함성
자크 타르디 지음, 장 보트랭 원작, 홍세화 옮김/서해문집·2만5000원

1871년 3월18일, 정부군이 민중의 편으로 돌아섰다. 역사적인 ‘파리 코뮌’의 신호탄이었다. 여자들이 총구를 가로막은 가운데 르콩트 장군이 발포 명령을 내렸지만, 병사들은 개머리판이 하늘로 향하도록 총을 거꾸로 들고 시민들과 얼싸안았다. “아! 이 얼마나 현기증 나는 일인가! (…) 시민들에게 새로운 태양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역사는 얼마나 위대한가!” 파리 코뮌을 눈앞에 둔 시위 장면에서 작가는 이례적으로 환희에 찬 감상을 적어두었다.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 민중의 함성>은 1871년 파리 코뮌을 무대로 한 역사추리소설 <민중의 함성>(1999, 장 보트랭)을 그래픽노블로 각색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국민 만화가’ 자크 타르디(1946~ )가 2004년 4권으로 완간한 대작을 언론인 홍세화가 우리말로 옮겼다. 타르디는 2013년 국가에서 주는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레지옹 도뇌르 수훈을 거부한 아나키스트. 민중과 혁명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열정적인 그림체에 빽빽하게 담았다.

당시 보불전쟁(1870~71)에서 패한 프랑스는 혼란에 놓여 있었다. 파리 시민들의 반대에도 행정장관 티에르는 프로이센과 강화조약을 추진했고, 봉기하는 민중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이야기는 1871년 3월17일 밤, 파리 알마 다리에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되는 것을 시작으로 9주 동안 이어진 코뮌의 전 과정을 숨가쁘게 그려냈다. 혁명의 열기 속에 부르주아의 음모, 성직자의 추악함,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는 인민의 혁명 사상, 사랑과 복수극이 어우러지는 대서사시다.

비밀경찰 그롱댕은 수양딸 잔의 살해범으로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하다 풀려났다. 그는 잔의 애인이었던 타르파냥을 진범이라 생각하며 추적하고, 형사 바르텔르미가 그롱댕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뼈대를 이룬다. 서로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들의 사연 속에 작가와 원작자는 시민 전사, 폭력배, 넝마주이, 코뮌 전사가 된 청소년, 여성들의 정치활동과 코뮌 참여를 두드러지게 표현했으며 그들의 맹렬함을 강조하고자 일상적 비속어를 곳곳에 삽입했다. 19세기 여성 혁명가 루이즈 미셸(1830~1905), 일간지 <민중의 함성>을 창간한 쥘 발레스(1832~1885), 코뮌에 함께한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시민군 장군으로 싸우다 바리케이드에서 사망한 폴란드 혁명가 야로스와프 동브로프스키(1836~1871)에 대한 존경도 함께 담았다.

책의 주요 부분인 ‘피의 일주일’, 학살 과정에서 민중들의 저항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자유로운 삶, 아니면 죽음을!” “우리가 서서 죽을 줄 안다는 걸 보여주자!” 후반부로 갈수록 지옥 같은 진압 작전과 결기 어린 민중의 함성이 뒤엉키며 나타나는데, 코뮌 전사들이 총살당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민중의 품격이 가슴을 두드린다.

당시 파리 시민과 코뮌 전사들을 비롯해 남녀노소 2만명이 학살당했고, 코뮌은 ‘평화를 회복하였다’는 정부의 선언으로 마무리된다. 파리 인민의 용기는 부랑자와 술꾼의 무질서한 폭동으로 격하되었고, 여성들과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도 과거사 속에 묻혔다.

옮긴이 홍세화는 자연스럽게 파리 코뮌과 광주항쟁을 연관시킨다. “두달 남짓의 대동 세상. 하지만 그것은 ‘피의 일주일’로 치닫는다. 그 일주일이 광주항쟁의 일주일과 그대로 포개지는 것은 역사의 우연일까.” 책에도 언급된 장 바티스트 클레망의 시 ‘피의 일주일’은 그래서 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무릎 꺾인 새 세상에 대한 염원과 같다. “최악의 날들은 끝날 것이다. 그리하여 설욕전을 조심하라. 가난한 자들이 모두 함께할 때!”

이 책은 자크 타르디의 한국어판 3부작 가운데 첫 권이다.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는 아이스너상 2개 부문을 수상한 <그것은 참호전이었다>(1993)와 또 하나의 대작 <빌어먹을 전쟁>(2008~9)은 올여름에 발간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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