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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무지개’는 일제에 맞선 혁명, ‘청포도’는 조국 독립 상징”

등록 2016-03-17 20:35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도진순 교수, 이육사 논문 발표
‘청포도’ ‘절정’ 등 새롭게 해석
‘광야’는 불교와 니체적 사유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이육사 ‘청포도’ 전문)

도진순 교수
도진순 교수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새롭게 해석한 논문이 나왔다. 한국사학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역사비평> 봄호에 발표한 논문 ‘육사의 ‘청포도’ 재해석-‘청포도’와 ‘청포(靑袍)’, 그리고 윤세주’가 그것이다. 이 논문에서 도 교수는 ‘청포도’를 익기 전인 ‘풋’포도로, ‘청포’는 독립투쟁을 벌이던 이들이 입었던 옷으로 풀었다. 그리고 “손님”을 대표하는 인물로 육사의 혁명 동지였던 석정 윤세주를 지목했다.

도 교수는 우선 육사가 시 ‘청포도’를 쓸 무렵 한반도에는 청포도 품종이 거의 재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강희자전>에서 푸를 청(靑) 자를 “생물이 태어날 때의 색상”이라 한 데 착안해 그것이 우리말 ‘풋’에 해당한다고 보고 ‘청포도’는 독립과 혁명의 미래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조국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청포’의 해석을 위해 도 교수는 두보의 한시에 의지한다. 그러나 조선의 두보 시 해설서 <두시언해>는 두보의 시 ‘지후’(至後)에 나오는 “청포백마가 달리 무슨 뜻 있으리오./ 금곡과 동타가 있던 낙양은 옛 모습 아니로다” 중 ‘청포백마’를 안록산과 사사명 같은 반란군으로 해석했다. “안록산과 사사명은 대체 무슨 뜻으로 난을 일으켰는가. 왜 그들은 내 고향인 낙양의 금곡과 동타마저 파괴하였는가”라고 해석한 것이다. 도 교수는 한학에 밝았던 육사가 <두시언해>의 ‘지후’를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두보의 또다른 시 ‘세병마’(洗兵馬)에도 “푸른 도포에 백마 탄 반란자들이 다시 어찌 있겠는가”라고 하여 ‘청포백마’가 반란자의 상징으로 다시 등장한다. 도 교수는 “육사는 두보가 부정적인 반란자로 표현한 이 청포백마를 긍정적인 혁명가의 이미지로 전환했다”며 “‘청포도’는 지치고 쫓기는 혁명가들을 맞이하는 향연을 노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육사
이육사
도진순 교수의 이육사 시 재해석은 ‘청포도’에 그치지 않는다. 다음달 발간 예정인 <민족문학사연구> 60호에 실리는 ‘육사의 ‘절정’: ‘강철로 된 무지개’와 ‘Terrible Beauty’’라는 논문에서 그는 육사의 또다른 절창 ‘절정’ 역시 새롭게 해석하는데, 특히 마지막 행에 나오는 ‘강철 무지개’에 대한 해석이 독창적이다.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절정’ 전문)

정한모와 김종길 같은 선행 연구자들은 강철 무지개가 ‘비극적 황홀’ 식의 긍정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도 교수는 기존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견해를 내놓는데, 이번에는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형가 이야기에서 근거를 가져온다. <사기> ‘추양열전’에는 형가의 암살 기도 사건 당시 하늘에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白虹貫日)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로부터 ‘백홍관일’은 군주 암살 또는 국가 변란의 상징으로 문학작품 및 천문현상 기록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강철로 된 무지개’는 검의 기세로 해를 찌르는 ‘흰 무지개’”를 상징하며 “물론 해(日)는 일제(日帝)”를 가리킨다는 것이 도 교수의 해석이다.

도진순 교수는 이달 말 발행되는 <한국근현대사연구> 제76집에도 ‘육사의 한시 ‘만등동산’과 ‘주난흥여’: 그의 두 돌기둥, 석정 윤세주와 석초 신응식’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육사의 두 한시를 분석한 이 글에서도 그는 ‘만등동산’ 중 “높은 데 올라 해가 긴 것을 한탄한다”에서 ‘恨日長’을 일제 지배의 지속에 대한 한탄으로 해석하며, ‘주난흥여’에 나오는 ‘지음’(知音)과 ‘노석’(老石)을 ‘청포도’ 해석에도 등장했던 혁명동지 윤세주로 보는 등 기존 해석들과 다른 참신한 해석을 선보인다.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 내부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 내부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도진순 교수는 이 논문들과 함께 자신이 육사의 ‘절명시 삼부작’이라 이름한 ‘나의 뮤-즈’ ‘광야’ ‘꽃’에 대한 논문들의 초고 역시 완성한 상태이며, “육사의 심상 공간과 여성관계 등을 다룬 기행문 및 논문을 추가해 단행본으로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 시 세 편은 불교와 깊은 관련성을 지닌다”며 “황현산 선생이 최근 저서 <우물에서 하늘 보기>에서 육사의 시 ‘광야’를 인간의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해석했지만, 육사는 오히려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쪽이었으며 불교나 니체 같은 카이로스의 수직적 시간관을 ‘광야’에서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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