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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천사여, 의지로 낙관하자!

등록 2016-03-24 20:32

부상당한 천사에게
김선우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김선우 산문집 <부상당한 천사에게>는 비관적 현실을 낙관의 의지로 뚫고 나가려 애쓴 기록이다. 여기 실린 글 대부분이 쓰인 2014~5년은 한국 사회가 ‘헬조선’의 면모를 한껏 떨쳐 보이던 무렵이었다(그렇다고 그 시기를 헬조선의 정점이라 하기도 어려운 것이, 이 사회는 지금도 하루하루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생때 같은 목숨 몇백을 어이없게 앗아간 세월호 사건,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자연 파괴, 쌍용차 사태, 설악산 케이블카 추진, 삼성반도체와 삼성전자 서비스의 노동 착취…. 비관과 절망의 증거는 차고 넘쳤으되 낙관의 근거는 희박했다. 그럼에도 김선우는 애써 낙관의 편에 서고자 한다.

“도처에 아픔이 너무 많다. 그래도 여기가 우리의 한 걸음이다. 수없이 패배하면서도 동시대 다른 아픔들의 손을 잡고 슬픔과 고통을 견디는, 차갑고 따스한 자그마한 강철 날개의 천사들. 지금 여기의 아픈 사랑들이 우리의 역사다.”

김선우의 낙관은 차라리 생존을 위한 당위에 가깝다. 책의 한 대목에서 “한계에 다다른 느낌 (…) 비관이 깊어진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을 추스른다. “현실이 비관적일수록 의지로 낙관하자.” 그의 낙관을 지탱하고 추동하는 것이 바로 ‘부상당한 천사’의 존재다. “희망이 없는데도 끝내 살아, 끝끝내 아름다워지는 사람들이 성인(聖人)인지도 모른다.”

비관적 현실을 낙관과 희망 쪽으로 견인하기 위해 특단의 조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고 하찮은 실천, 그가 ‘일상의 혁명’이라 일컫는 구체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바람직하다. 산문집 전체에 걸쳐 그는 자유, 행복, 사랑, 쾌락을 줄기차게 강조한다. 불의하고 부조리한 현실 앞에 분노와 슬픔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는 “춤추면서 싸우자”고 말한다. 저항을 하되 즐겁고 행복하게, 축제의 방식으로 하자는 것. 지제크와 바디우의 ‘글로벌 자본주의’ 비판 같은 거대담론에는 회의적인 그가 경비원, 청소부, 식당 종업원 같은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사랑할 상대를 고르라 조언하는 것은 또 다른 사례다. “‘내 안의 괴물’ 운운보다 ‘내 안의 천사’나 ‘내 안의 부처’를 더 많이 발견하려 애쓰고 작은 행동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낫다”는 게 이 일상 혁명가의 믿음이다.

시로 출발해 소설로 영역을 넓혔으며 산문집도 여럿 낸 전업 작가 김선우에게 글쓰기는 수양의 방편이자 사회 변화의 무기이기도 하다. “하나의 문장을 최선을 다해 만드는 그 시간 동안 글 쓰는 사람의 내면에는 분명히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시는 혁명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시는 혁명 이후 혁명의 마음을 지킨다.”

<한겨레>에 연재한 ‘김선우의 빨강’을 비롯한 칼럼과 발표하지 않은 산문을 한데 엮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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