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병초·안도현·정양·문태준·박성우 시인.
안도현 시인 등 전북지역 문인 20여명
‘모악출판사’ 차리고 첫 시집 발간
‘모악출판사’ 차리고 첫 시집 발간
“지난해 한국문학판에 회오리를 몰아오다시피 한 문학권력 논란을 거치면서 지역 문인들끼리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상업적 목표를 향해 치닫는 출판 풍토에 대한 반성 혹은 자구책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거죠. 이른바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하는 건 문인들의 공통 욕망인데 출판사들이 그 욕망을 다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빛을 보지 못해 묻혀 있는 좋은 원고들을 발굴해 책으로 낼 생각입니다.”
안도현(우석대 교수) 시인이 최근 전북지역 동료 문인 20여명과 함께 출판사 ‘모악’을 출범시킨 이유다. 모악은 안 시인과 김용택·유강희 시인, 소설가 이병천 등 전북 출신 문인들이 공동 출자해 올초에 등록했다. 전주와 완주, 김제에 걸쳐 있는 모악산에서 출판사 이름을 가져왔다.
4일 낮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 시인은 “출판사 이름이 너무 지역성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역에서 시작하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며 두루 품는다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출판사 모악의 첫 책으로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를 낸 정양(72·우석대 명예교수) 시인, 이 시집에 발문을 쓴 이병초 시인, 모악시인선 기획위원인 문태준·박성우 시인 등이 참석했다.
정양 시인은 정치적 이유를 들어 시를 쓰지 않고 있는 안 시인을 겨냥해 “시를 써야 할 사람은 안 쓰고 그만 써도 될 사람이 시집을 내게 되어서 안됐다”는 농담조로 말문을 열었다. 시집 1부에 1950년대 중·고교 시절을 해학적으로 돌이킨 시들이 집중되었다면, 표제작에 해당하는 ‘핏발 선 눈을 가리고’와 시인 자신 가장 애착이 간다는 ‘눈 감은 채’에서는 눈(眼)과 시각 기능에 주목한 것이 눈에 뜨인다. “핏발 선 눈을 끝내 가리고/ 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핏발 선 눈을 가리고’ 부분) “박박 감아주는 손길에 머리통을 맡기고/ 눈 부릅뜨지 못한 일들을 눈 감은 채 헤아린다”(‘눈 감은 채’ 부분)
그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감겨 주는 동안 눈을 감고 있을 때, 눈을 부릅떠야 하는데 뜨지 못한 일들이 생각나서 쓴 시가 ‘눈 감은 채’”라며 “박근혜씨가 요즘 세월을 역주행하니까 나도 유신 이전 시절로 미리 가보느라 쓴 게 시집 1부의 시들”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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