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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채의 지배를 단호히 거부하라

등록 2016-05-12 20:23수정 2016-05-13 10:29

크레디토크라시
앤드루 로스 지음
김의연·김동원·이유진 옮김/갈무리·2만원
금융위기의 역사는 신용위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부채에 대한 담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선 국내에서 빚은 시한폭탄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빚’이라는 단어는 대개 공포에 이어 자책이란 감정을 수반한다. 진일보한 담론마저도 채권자의 사기라는 측면만 부각하면서 채무자들을 점잖게 타이르기 일쑤다. <크레디토크라시>는 빚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과 결별할 것을 요구한다.

성장의 복음이 가계로 전파되면서 부채는 급속히 늘어났고 이 과정에서 채권자에게 소득이 이전됐다. 그 결과 채권자 계급이 절대적 권능을 행사하는 ‘부채의 지배’(creditocracy)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은 ‘파생상품이라는 마술을 통해 투자은행들이 이익을 사유화한 뒤 손실을 사회화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채권자들의 찬사를 받아 온 ‘복리의 마법’이 채무자들에게는 ‘복리의 착취’로 바뀐다는 대목이 핵심이다. “차입자의 소득이 복리부채와 비슷한 비율로 증가하지 않는 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대부는 이론적으로 결코 성립될 수 없다”고 지은이는 설파한다. 소득 증가율이 이자 증가율보다 조금만 낮아지더라도 부채 회수는 난항을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부실화한 대출채권들을 섞어 제조한 ‘파생폭탄’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그 악명 높은 주택저당증권(MBS) 따위다.

지은이는 이론과 달리 이자율이 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데 주목한다. (토마 피케티도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다고 논증한 바 있다.) 이자율과 성장률의 간극은 이러한 부채 시스템이 결코 상환될 수 없는 폰지형 사기 방식(다단계 금융사기)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또 학자금 부채를 ‘기한부 노예계약’이라고 비판한다. 학생들의 미래 소득을 담보로 학생들에게 교육비 조달의 고통을 주는 방식은 국가의 재정책임을 사적 개인에게 이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학자금 대출을 통한 이익금이 교육에 재투자되지 않고 정부 부채를 상환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 부채 중 상당 부분이 이라크 전쟁 비용과 거대 은행들의 구제 금융을 조달하느라 짊어진 ‘더러운 부채’였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저들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야 하는가?” 지은이는 이렇게 반문하며 부채를 거부하라고 주장한다. (‘빚을 꾸짖을 게 아니라, 억압적인 채무 체제를 단호히 거부하라’는 리처드 딘스트의 <빚의 마법>과 맥락을 같이한다.) 채무자들의 저항은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수탈적 대부가 생산적 신용에 의해 대체되는 사회를 열기 위한 예비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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