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 실업, 빈곤, 추방, 수감 같은 현상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이 모두 ‘쫓겨나는’ 것이라고 사센은 설명한다. 사진은 일본 후쿠시마현 도미오카정 중앙상점가. 원전 사고 뒤 ‘유령 도시’가 됐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
80년대 이후 ‘약탈적 동력’ 분석
퇴출로 성장 구가하는 현실 비판
80년대 이후 ‘약탈적 동력’ 분석
퇴출로 성장 구가하는 현실 비판
-복잡한 세계 경제가 낳은
잔혹한 현실
사스키아 사센 지음, 박슬라 옮김
글항아리·1만8000원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성에 견줘 국내에 번역서가 드문 학자에 속했다. 2014년 작 <축출 자본주의>(Expulsions, 하버드대출판부) 발간이 반가운 이유다. 사센은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공부했으며 세계화와 영토성, 주권, 국제금융, 이주, 노동, 여성 문제를 통괄하는 분석을 선보여왔다. 2011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선정한 100대 사상가에 들기도 했다. “오늘날 세계는 매우 강력한 정치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축출’이라는 새로운 논리가 출현한 것이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축출’을 말한다. 시장 확대와 기업 자유를 강조한 기존 신자유주의의 틀로는 지금의 복잡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축출’은 평범한 사람, 생물들을 원래 살던 공간에서 몰아내는 동력과 구조를 살피는 새로운 틀이다. 책은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약탈적 동력”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체제의 변두리”로 밀어붙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축출은 한 사회 내부의 ‘배제’보다 심각할 수 있다. 대상이 다시는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완전히 퇴출된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면 모두가 일을 덜 하면서도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선진’ 경제와 첨단 기술은 포용보다 축출, 퇴출, 퇴거, 제거의 메커니즘을 만들었다. 예컨대 유럽연합의 압력으로 일자리를 뺏긴 그리스 공무원, 젊고 건강한 ‘잉여 인구’, 광산 유독물질이나 누출된 원전 방사능을 피해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하는 원주민, 플랜테이션으로 땅을 뺏긴 가난한 나라의 소농, 대를 이어 캠프에 수용된 난민, 민간 교도소에 투옥된 장기수감자 등이다. 실업, 빈곤, 자살, 실향, 추방, 수감 같은 현상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방향만큼은 동일하다고 사센은 설명한다. 그들 모두 “쫓겨나는 것”이다. 사센은 이기적 지배계층이 아닌 ‘구조’의 논리를 해명하는 데 힘을 쏟는다. 세계 자본주의의 ‘약탈적 구조’는 1980년대 이후 제 모습을 갖춰갔다. 사회복지를 줄이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아이엠에프(IMF)를 비롯한 국제기구의 강요로 약소국 국민들은 공공인프라, 값진 보건정책, 저렴하고 질 좋은 교육 기회를 박탈당했다. 수학자, 물리학자, 변호사, 회계사 등 세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만든 과학적 금융 도구가 ‘지옥문’을 열었다. 이 도구가 발명되고 미국에서만 1300만가구 이상이 주택을 압류당했고, 2008년 하루 평균 1만가구가 집을 잃었다. 축출이라는 흐름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례는 민영 교도소와 토지 수탈이다. 공영 교도소가 민간 사업으로 바뀌면서 운영자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오래 가둬두고 싶어했다. 수감자 머릿수를 늘리려고 미국 업자들은 정치권에 후원금을 뿌렸으며 판사에게 뇌물을 주었다. 형량을 무겁게 하는 엄벌주의는 교도소 부족을 낳았고, 이는 다시 민간 수감시설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30년간 미국 수감 인구는 600% 증가했다. 수감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사는 주요 고객은 스타벅스, 월마트, 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대기업들이었다. 민영 교도소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 체코, 헝가리,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번졌다. 프랑스, 아일랜드, 캐나다에도 이제 교정 프로그램 민영화 바람이 분다. 한국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2006년 이후 식량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려는 ‘영토 전쟁’이 가속화했다. 가난한 나라의 땅을 사는 일에 한국도 뛰어들었다. 2010년 자료를 보면, 한국은 마다가스카르 영토를 사들인 주요 매입국이며 탄자니아, 수단 영토도 매입한 것으로 나온다. 빈곤국 땅은 조각조각 해체되고 원주민들은 자기 집과 땅에서 쫓겨난다. “주권국가의 영토권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사센은 분석했다. 오늘날 물도, 식량도 시장가치를 지닌 ‘상품’이며 ‘약탈’ 대상이다. 글로벌 기업 네슬레 회장은 “가장 중요한 원자재”인 물에 대한 접근권을 인권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8억7000만명,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7억8000만명의 잔혹한 실상은 성장과 번영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축출의 배경에는 ‘범세계적 조직성’이 있다. 문제는 ‘축출’이 지역이나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사센이 제3세계의 특수한 경험이나 역사적 맥락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가능할지 몰라도, 그는 지금의 잔혹하고 도도한 흐름에 이데올로기나 제국주의의 역사적 구분도 큰 의미가 없다고 확신한다. 대신, 그는 비가시적이지만 기저의 깊숙한 흐름을 형성하는 “지하동향” 개념을 제안한다. 지하동향은 사람과 생물을 축출하려는 일방향 체제 논리다. 그러나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순간, 세계를 지옥도로 재편한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사센 또한 모르지 않는다. “체제란 구조가 복잡할수록 이해하기 힘들고 책임자를 지목하기도 어려우며 따라서 구성원들의 책임의식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센은 ‘축출’ 논리를 인식하게 된 지금이야말로 ‘성장과 번영’이라는 의미를 재규정할 때라고 본다. 인간과 포용적 경제, 삶의 공간이 축소되는 현실은 전지구적이고, 이 현존하는 ‘장소’를 드러내고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오염으로 대기와 땅, 물이 죽어가는 문제를 포함해 축출된 공간을 ‘재편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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