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조선 잔혹사
허환주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허환주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제목만 보고 생각했다. ‘헬’조선(朝鮮) 성립 과정을 다룬 근현대사 이야기겠거니. 몇자 읽어보니 이 조선은 그 조선이 아니라 배 만드는 ‘조선’(造船)이었더랬다. 조금 더 읽노라니 알겠다. 이 조선, 저 조선 다를 게 없구나. 헬조선이긴 둘 다 마찬가지인 거다.
<현대조선 잔혹사>는 조선산업 현장에 드리운 전쟁 같은 노동의 실상을 고발한다. 한국 조선산업은 오랜 기간 세계 1위를 구가했다. 그 이면에 출구 없는 노동의 개미지옥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책은 폭로한다. 이런 것들이다. 2014년 조선 사업장에서 일하다 37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숨졌다. 올해 들어서도 현대중공업 그룹 조선 계열사에서만 7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강재 연마 작업 도중 기계장치 사이에 가슴이 끼어 숨졌다. 공장이 어두워 시야 확보가 안 된 게 사고를 불렀다고 현장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산재 사망 노동자는 대부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다. 철저한 위계사회로 굳어지고 있는 헬조선의 이름에 값한다. 2013년 국내 9대 조선소 인력 중 정규직(직영)은 3만5712명, 비정규직(하청)은 10만5041명이었다. 직영 1명에 하청 3명꼴이다. 1993년에는 직영 1명 대 하청 0.3명꼴이었다. 하청은 직영 임금의 52%만 받으면서, 폭발 위험이 큰 도장, 방사선 검사 등 더 극한의 작업을 도맡는다. 임금과 관리 비용을 깎고, 산재 책임마저 하청업체에 떠넘기려는 거대 조선 기업들의 전략이 관철된 결과다.
사상 최대 위기 속 조선 기업들은 이제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 외친다. ‘하청’이 먼저 잘리고 있지만, 범퍼가 깨지면, 금방 직영 차례다. 하청으로 덩치를 키우고 준비 없이 해양플랜트 수주에 뛰어들어 이 꼴을 만든 기업의 생존 논리 앞에 노동자는 목만 빼고 있어야 하는 걸까. 지은이는 <프레시안> 기자다. 2012년 조선 하청업체 직원으로 ‘위장취업’했다가 12일 만에 철수했다. 이때의 혹독한 체험에 오랜 취재 내용이 녹아, 헬조선의 현실에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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