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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비거는 날 수 있다

등록 2016-06-02 20:27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

이봉섭 지음/사이언스북스·1만9500원
“임진년에 왜국의 괴수들이 창궐했을 때 영남 지역의 고립된 한 성이 겹겹이 포위를 당해 금방이라도 함락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성주와 매우 친한 사람 중에서, 평소 아주 색다른 기술을 지닌 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비거를 만들어 타고 성안으로 날아 들어가, 벗을 태워 성 밖으로 30리를 비행한 뒤 착륙해 왜적의 칼날을 피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비거변증설’편에 나오는 세계 최초의 비행기 ‘비거’다.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호보다 300년 앞선 이 비행기는 임진왜란 때인 1592년 진주성 위를 날아다녔다고 한다. 제작자인 전라도 김제 사람 정평구는 재담과 임기응변에 능했던 하급 무관으로 전해진다. 비단으로 감싼 벌통을 왜군의 침공로에 놔두어 혼쭐을 냈다는 등의 이야기로 민담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비거를 근대 항공기의 원형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대답하기 힘들다. 비거의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일하는 한국인 항공기 설계가가 기록한 ‘비거 제작기’다. 저자는 단편적으로 남은 역사기록을 분석해 비거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과 부풀려진 기대를 구분하고, 조선 중기의 과학기술의 수준을 고려해 비거 모형 제작에 나선다.

비거는 날 수 있었을까? 저자는 가능하다고 본다. 전통 한선의 돛 구조가 현대 비행기 날개의 구조와 같다는 점에 착안한 저자는 바람을 모았다가 흐르게 함으로써 나무 동체를 뜨게 했다. 임진왜란 때 사용된 화약무기인 신기전의 원리를 이용해 비거를 쏘는 추진장치를 구상했다. 고도를 확보하기 위해서 추가로 약통을 장착, 발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비거는 조종 가능해야 했다. 저자는 정평구가 양손으로 두 날개의 밧줄을 당기고, 두 발로 꼬리날개에 연결된 발판을 누르면서 항로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원리를 가정해 축소 모형을 제작했고 21세기의 작은 비행기 비거는 하늘을 부드럽게 유영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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