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시인
김정환 지음/문학동네·8000원 김정환(62·사진)의 새 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은 읽기에 녹록지 않다. 시인 특유의 사회과학투 관념어들이 난무하는데다, 소통보다는 발설 자체가 목적이라는 듯 방언처럼 내뱉는 말들에 웬만한 독자라면 기가 질릴 법도 하다. “지명의 분명은 위축은 물론 역전-전화와도 응집과도 양면의/ 이면과도 다르다”(‘분명’) 같은 문장을 이해하자면 시인 자신의 설명을 제법 길게 들어야 할 듯싶다. 그럼에도 시집을 통독한 독자에게는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모호한 느낌은 남을 텐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노후(老朽)와 죽음의 이미지다. 시인이 회갑 이후 처음 내는 이 시집에서 자신의 생물학적 늙음과 함께 세계 자체의 노후에 눈길을 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뭐지, 저, 밀가루 반죽을 얼굴 형용으로 뒤집어쓴 화상은?/ 시간은 스스로 노인인 적 없이 저 혼자 숱한 노인을 빚을 뿐인데,/ 뭘 착각한 거지 저 한없는 슬픔의 시간은?/ 내려앉은 몸의 지명 아니고 정치 너머 아니고 그냥 쪼잔한 저 말,”(‘고립의 역정’ 부분) “이제 세계가 늙고 세계의 언어가 늙는다,/ 여기저기 모서리에 자꾸 난데없이/ 복사뼈를 가격당하는/ 인간의 노년 품고 인간의 노년보다 더./ 자연도 늙는다는 건 정신보다 육체가/ 더 조심성을 잃는다는 뜻이지./ 늙음의 문법은 ‘자꾸’와 ‘난데없이’ 같은/ 부사격으로 늙어간다.”(‘보유(補遺): 발굴 바벨탑 토대’ 부분) “전기 문명의/ 낯익은 괴물” 노후 원전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담은 ‘원전 노후’에서 늙음의 이미지가 문명 비판으로 이어진다면, 13쪽에 이르는 장시 ‘물 지옥 무지개-세월호 참사의 말’에서는 제 자식을 잡아먹는 신화 속 인물 크로노스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어른의 희망이었던 아이들의 그 아픈 무지개가 있을까? 있단들 우리가 볼 수 있을까, 있단들 볼 자격이 있을까?” 인용한 시에도 나오는 ‘~ㄴ들’은 ‘~ㄹ밖에’와 함께 시집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어미인데 회의와 체념, 뭉뚱그려서 달관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 말들의 노후성 역시 시집의 기조와 연결된다. “‘밖에’들의 그 너그럽고/ 유순한 치매”(‘최근 미국 사정-그리고 슬픈 순간의 영원, 1990년 서라벌레코드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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