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 위 돌을 놓는 교차점은 361개다. 흔히 ‘우주의 원자보다 많다’는 바둑의 경우의 수는 이 361개의 착점에서 만들어진다. 하나의 글이 만들어지는 경우의 수는 몇 가지나 될까. 단어의 수가 361개보다 훨씬 많으므로, 정확히 같은 글이 만들어질 경우의 수는 우주의 원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글쓰기에 왕도가 없다’는 말은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무한한 가능성의 영토를 헤매는 이들을 다독이는 말이다.
<이공계 X의 글쓰기책>을 지은 유키 히로시는 50대 프로그래머이면서 작가다. 다양한 분야의 입문서를 써왔는데 프로그래밍 언어, 디자인 패턴, 암호, 수학 등 주로 이공계 분야 책이다. 글쓰기 원칙도 이공계스럽다. ‘읽는 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독자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쓰기에도 ‘역지사지’의 이치가 요구된다.
글에 숫자가 들어가면 으레 직독직해가 어렵다. 더 친절해야 한다. 지은이는 수식이나 수학 용어가 들어간 글을 쓸 때 어떻게 해야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되는지, 몸소 친절히 일러준다. 바로 옆에서 조곤조곤 자세히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독자의 입장을 생각한’ 글쓰기 원칙이 책에 구현돼 있다. 매 장마다 시작과 끝 부분에 ‘이 장에서 배울 내용’, ‘이 장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했다. 숫자를 나열할 때는 부가 정보를 덧붙여 읽기 쉽게 하고, 독자 스스로 이해한 바를 확인할 수 있게 하라고 조언한다. 책의 색인항목과 참조 페이지를 만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설명해놨다. 참조 페이지 수가 너무 많다면, 항목을 다시 세분화해 항목당 페이지 수를 적게 하라고 조언한다. 가히 친절의 왕이다.
이공계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수학이나 과학 교사, 수학 교과서나 문제집, 과학 이론 서적, 전자제품 설명서 등을 만드는 이들, 경제 영역을 다루는 글을 쓰는 이들이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다만 지나친 친절이 실소를 낳기도 한다. 지은이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경우 정기적으로 파일을 백업하자’는 이야기까지 굳이 책에 썼다. 일관되게 쓰인 높임말도 불필요해 보인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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