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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도저로 예술단 밀어내기

등록 2005-10-27 17:15수정 2005-10-28 14:29

불도저로 예술단 밀어내기-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해체·대량해고 이명박
불도저로 예술단 밀어내기-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해체·대량해고 이명박
서울시가 강행하는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해체·대량해고
수익성 논리 앞세워 ‘문화 학살’
민예총·문화연대 등 모인 공대위는 외친다
“시장님, 예술 공공성 놓고 토론 한번 합시다”
이재현의 인물로 세상읽기/이명박 서울시장

지난 10월20일 저녁에 세종문화회관 분수대에서는 무료 시민공연이 열렸다. 이 날 공연은 도인풍 복장의 무용가가 나와서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했다. 관객들이 편하게 계단에 앉아 손에 촛불을 든 채 관람한 이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노동조합이 ‘세종문화회관을 시민에게’라는 이름 아래 마련한 아홉번째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에는 크고 작은 공연장이 있는데 왜 서울시 예술단체 소속 예술가들은 굳이 밖에 나와 공연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이명박 시장 탓이다. 서울시가 세종문화회관 산하의 서울시 예술단들을 없애겠다고 나서자 예술단 소속 예술가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기도 한 예술가들이 시민공연기금을 걷어 마련한 게 이 공연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7월 서울시는 세종문화회관 산하 9개 예술단체들을 일방적으로 해체하겠다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해 비밀리에 서울시 의회에 보고했다. 내용인즉, 극단, 무용단, 합창단, 국악관현악단, 뮤지컬단 등을 해체시킨 다음에 앞으로는 작품마다 출연진을 모집해서 임시로 쓰는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예술단 해체 + 대량 해고 +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을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일종의 문화적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독립법인인 세종문화회관이 이렇듯 서울시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것은, 세종문화회관에 주는 출연금을 빌미로 해서 서울시가 파견한 공무원들이 이러한 학살을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국문화예술노동조합 세종문화회관지부의 지부장과 예술노조 위원장을 해고했던 세종문화회관쪽은 지난 10월 초에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소속 예술가 12명을 자르고 1명에게 경고 조처를 내리고 조합원 2명을 직위해제 하는 일을 자행했다. 노사협의를 통해 합의한 별도의 단원평가 제도가 엄연히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평가를 한 뒤에 이를 근거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 쪽이 이런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기본논리는 “돈벌이가 안되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경영진에게 추궁해야 할 책임을 예술가들에게 전가한 것이다.

경영진 책임 예술가에게 떠넘겨

이렇게 수익성을 따지는 서울시는 사업타당성 검토도 끝나지 않았는데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8월 29억여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이번 10월 초에는 내년부터 5년간 해마다 1천억원씩 총 5천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이렇게 무리하게 추진되는 계획에 대해서, 시민단체 서울시민포럼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입지인 노들섬이 복합문화공간을 짓기에 너무 협소하고 접근통로가 한강대교 밖에 없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거대 시설물 투자가 아니라 문화 소프트웨어와 소규모 시설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오페라하우스가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기괴한 건축물만을 양산하는 낡은 전략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무리한 일정에 공정성과 정당성이 배제된 추진방법으로 인해 건설과정마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명박 시장과 서울시가 예술단을 해체하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예술은 건설처럼 밀어붙인다고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이 달리 건설이나 건축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건설이나 건축 역시 밀어붙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청계천 복원사업을 보자. 시민들은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본디 서울시 안에 시민들이 쉽게 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생태적이고도 문화적인 공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반면에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그런 공간이 이제 겨우 생겨나서 좋아하는 것일 따름이다. 시민들이 제 발로 걸어다니면서 즐기는 한에 있어서 그 공간은 시민의 것이 되는 법이니까.

소위 복원되었다는 청계천에 대해서 이미 많은 비판이 나왔다. ‘시멘트 연못이다’ ‘거대한 인공 분수대다’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도시계획, 건축, 환경, 문화유산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청계천을 복원해야 한다고 수없이 제안하고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시장은 옛날 식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자화자찬을 추가한다. 1970년대의 경부고속도로도 자기가 맡아서 했더라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리하게 추진한 탓에 준공 이후에 경부고속도로 어느 구간에서든지 노면 보수공사가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억지 주장이다. 이 시장이 이렇게 ‘추억의 7080’ 개발독재를 강행한 것은 자신의 임기 중에 업적을 쌓아서 소위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청계천에 대해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반대 여론 들끓는 오페라하우스

언론의 이 시장에 대한 평가의 골자는 추진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추진력은 국내에서 이 시장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현직 교수를 굳이 구속시키겠다는 공안 검사들도 추진력이 있는 셈이고, 자기네 사주의 건에 대해서는 불구속수사가 원칙이라고 애써 우기다가 이번에는 공안 검사 편을 든 수구 언론도 추진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세계 일류기업 삼성도 추진력있게 불법자금을 정치인들에게 먹였다. 나라 밖에서는, 마구 전쟁을 벌여대는 부시도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추진력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복지부동이 더 낫다.

지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입구 한쪽 구석에는 초라하고 지저분한 비닐 천막이 설치되어 있다. 그 전까지 중앙계단 쪽에 자리잡았다가 옮겨 온 이 비닐 천막은 지난 8월30일에 시작된 세종문화회관 노동조합의 항의 농성과 더불어 설치되어 50일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비닐 천막이 놓인 자리야말로 서울시 문화예술 행정의 현주소다.

비닐 천막에서 눈을 돌려 회관 건물 가운데를 올려다보면 예정된 공연의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간판들 중에는 곧 대극장에서 열릴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협주곡의 밤’을 선전하는 것도 있다. 이번 공연에는 <침향무> <비단길> 등 이미 잘 알려진 작품들이 연주되며, 황병기 선생 외에도 민의식, 곽은아, 김일륜, 이지영 등 뛰어난 가야금 연주자들이 황병기 선생이 작곡한 곡들을 연주한다고 한다. 이 중 상당수는 새롭게 편곡되거나 초연되는 것이다. 황병기 선생의 예술적 성취나 업적으로 볼 때 올해의 국악계 공연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황병기 선생이 이룬 예술적 성취의 깊이에 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만큼, 곧 해체될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의 소속 예술가들의 딱한 처지도 부각된다.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은 1965년 한국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으로 창단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곡가 김영동이 1990년대에 지휘자로 있었던 곳도 바로 이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이다. 물론,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전체 단원들의 반을 잘라낸 서울시는 그러고 나서도 예술단 해체계획이 사실무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50일 넘긴 항의농성 비닐천막

예술단의 해체는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에 고용된 예술가-노동자들이 해고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노동자의 목을 일방적으로 쳐냄으로써 서울시가 시민들한테서 예술을 빼앗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세종문화회관의 예술단 해체와 대량 해고 사태는 이미 노사간의 문제를 넘어 전체 시민의 문제로 번졌다. 일련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문화연대 등이 모여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지금 이명박 시장에게 이번 사태를 포함해서 예술의 공공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제안해 놓고 있다.

이재현/작가
이재현/작가
얼마 전 주간지에서 호기있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비판했던 이명박 시장은 이회창 전 총재쪽이 반발하자 발빠르게 사과했다. 이명박식의 추진력을 다시금 발휘한 것이다. 이명박 시장이 진정으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안한 토론회에 발빠르게 응하기를 바란다. 어차피 대선에는 후보들간의 토론회가 있으니, 예행연습을 겸해서 이번 토론회에 응하는 것이 이 시장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도 좋을 듯하다. 토건업이나 건설업 경력만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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