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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화쓰레기’는 다 버리고 좋거나 잘팔리는 책만 오롯이

등록 2005-10-27 18:21수정 2006-02-06 20:53

헌책방 순례/책방 진호

‘책방 진호’(02-815-9363) 주인 김형창(57)씨는 하루 몇 차례 책을 버린다. ‘문화쓰레기’라고 이름했다. 중간상한테 사들인 책 가운데 30%가 여기에 해당한다.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금방 구별된다. 34년동안 밝힌 눈이다. 좋은 축에 들지 않는데가 팔리지 않는 책이 소위 문화쓰레기다.

노량진역에서 5분 거리, 뻥 뚫린 6차선 장승백이 길. 가게는 전면이 유리인데다 반듯한 사각형. 책들 역시 쌓이고 꽂힘에 군더더기가 없다. 벽 책꽂이 외에 여느 책방처럼 가운데 쌓아둔 게 없다. 책꽂이 앞에 종아리높이로 한켜 쌓였을 뿐. 바닥에 듬성듬성 놓인 책들은 금방 어디서 가져온 듯 혹은 어디로 넘기려고 묶어놓은 듯하다. 시원하다 못해 썰렁하다.

“이 공간 금방 채워요. 일주일 정도 버리지만 않으면….” 책상에는 도서관의 정리도서와 출판사에서 나온 재고소설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만주국정지도총람>(강덕 11년판) <만주경제제도론> 등 만주국 관련 낡은 책이 묶여 있고, 발치에는 <에도시대 화가들> <일본이계회권> <일본 가공전승 인명사전> 등 일본미술 관련 서적이 50여권 묶여 있다. “묶여 있어야 제값을 발휘하는 책들이 있어요.” 그는 ‘일괄자료’라고 설명했다.

책등이 보이지 않게 돌려놓은 책 뭉치가 눈에 띄었다. “아껴놓은 겁니다. 들여온 뒤 바로 풀면 허전해요.” 그러한 ‘비장의 것’이 있으면 가게로 나오는 걸음이 가볍다. “생각하면 우스워요. 그게 뭐 별 거라고….” 요즘처럼 힘든 때 스스로를 북돋는 부적과도 같다.

책방이름 진호는 철진, 철호 두 아들 이름의 끝자를 땄다. 아무렇게나 책방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시작할 때의 다짐이다. 지금도 그것은 변함없다.

중학생쯤 됨직한 소년이 참고서 6권을 고르고 1만원에 달라며 떼를 썼다. 주인은 “책에는 값이 있다”며 “버리면 버렸지 그 값에는 안 된다”고 말을 잘랐다. 그는 싸게 판 책은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값싸게 만들어진 책 역시 지적 자원화하기보다 소모된다고 말했다. “묵직한 책이 잘 안 팔려요. 가볍고 표지가 쌈박한 것을 많이 찾습니다.” 그래서 사회과학 분야를 찾는 손님은 한번 더 본다.


책 구해달라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꼭’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전과는 달리 구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그만이거나, 인터넷 등 ‘손가락만 까딱하면’ 구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영영사전이 쌓인 데를 가리켰다. 코빌드, 롱먼, 옥스퍼드, 랜덤하우스 등 15권 남짓이다.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꼭 필요한 것인데 안 팔린다. 국어사전도 그렇고 백과사전도 그렇다. “일본에서 사전 매출이 70% 떨어졌다는 얘기를 3년 전에 들었어요. 우리는 올해부터 확 표가 나네요.”

여러 외국어에다 참고서, 소설, 인문분야 등 두루 꿰어도 임대료 걱정하고 있는 현실이 가끔은 서글프다.

그는 서랍에서 에도시대(1836년)에 발행된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화광노인)의 만필집 <화본괴 2편>을 꺼내 조심스럽게 펼치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책이 좋다면서 돈벌이만 생각하면 진작 걷어치웠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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