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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 세계의 햇살 속에서

등록 2016-07-01 20:49수정 2016-07-03 09:10

하재연, 나의 시를 말한다
다른 시간을 위해 토요일에 시를 읽습니다. 잊어온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무뎌진 것들에 대한 송곳의 날카로움으로, 버린 것들에 대한 발견으로.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산문으로 설명하고, 시와 노랫말 전문가가 독자들에게 시의 지도를, 초대손님이 시와 관련된 체험을 들려줍니다. 지면에는 여백이 있습니다. 시인, 전문가, 초대손님들이 스쳐간 자리에 스며든 나의 다른 시간. 다른 시간을 위한 자리입니다. 시인과 초대손님의 시 낭송은 정보무늬(QR코드)를 통해 <한겨레티브이(TV)>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주의 시인, 하재연

안녕, 드라큘라

당신이 나를 당신의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면
나는 아이의 얼굴이거나 노인의 얼굴로
영원히 당신의 곁에 남아
사랑을 다할 수 있다.
세계의 방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햇살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살아있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은 당신의 소년을 버리지 않아도 좋고
나는 나의 소녀를 버리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세계의 방들은 온통 열려 있는 문들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고통스럽다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이 나를 당신에게 허락해 준다면
나는 순백의 신부이거나 순결한 미치광이로
당신이 당신임을
증명할 것이다.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낳을 것이고
우리가 낳은 우리들은 정말로
살아갈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처음 내는 목소리로
안녕, 하고 말해 준다면.
나의 귀가 이 세계의 빛나는 햇살 속에서
멀어 버리지 않는다면.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수록-

소녀는 생각했던 것 같다. 세계의 낮이란 왜 이다지도 밝은 것일까. 햇살이 눈부신 이 거리에서는 눈을 뜰 수가 없구나. 밤 내내 벌어지던 상처는 따가운 태양 광선에 데기라도 한 듯, 봉합되어 보이지 않는데, 어쩐지 내 피부에는 붉은 흔적이 남은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다.

소년은 생각했던 것 같다. 갈라지고 흩어져서 하나로 그러모을 수 없는 목소리란 나의 것일까. 타인의 말소리를 흉내 내 보아도, 소년은 단 한 번도 진짜 자기 것이라 생각되는 목소리를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없다.

밤의 시간 속에서만 열리고 떨리는 것들, 눈동자의 홍채와 달팽이관의 림프액, 고통의 감각들.

밤마다 해 왔던 상상 속에서만 제 목소리를 들어 왔던 소년이 건네는 인사말. 안녕, 이라는 최초의 인사는 소년의 성대를 울리며 밖으로 나아가고, 공기의 층을 타고 더 멀리 나아간다. 소년과 소녀의 영혼을 흔들며, 떨림으로 그들이 동류의 존재임을 증명한다.

이 시는 영화 <렛 미 인>을 보고 나서 썼다. 이제 영화의 뒷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너를 내 안에 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능한가.

내가 쓴 시를 남의 것처럼 낯설게 읽으면서, 나의 스무 살 때가 겹쳐 떠오른다. 낮의 햇살이 너무 밝아 도무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 자신이 햇빛 아래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집에서 나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때까지, 어둠이 내 무거운 육신의 실루엣을 희미하게 만들 때까지, 땅만 보고 걸었다. 희미해지고 싶었고, 사라지기를 바랐다. 다만 방 하나를 가지고 싶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나의 흔적이 거기 있어도 괜찮을 단 하나의 공간.

나의 존재를 인정하기조차 이렇게 힘든 일인데, 사랑이란, 무엇일까, 온 힘을 다해 타인을 받아들여 내가 여기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일까. 나는 이곳에 살아있고, 거짓말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속의 꿈과 같은 것일까.

소녀와 소년은 자라 어른이 되었다. 소녀는 자기 바깥의 소년을, 소년은 자기 바깥의 소녀를 원하고 그 만남이 자신의 어두운 구멍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고독이라는 검은 구멍. 곧 믿음은 깨어진다. 나날이라는 크고 엄연한 세계의 룰 속에서는, 누구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고독을 메울 수 없다. 다만 그 불가능을 확인할 뿐이다. 깨어진 꿈의 절단면을 우리는 다른 것들로 덧대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거나, ‘아이’라는 이름, 또 다른 무엇인가로 자꾸 이름이 바뀌는 것들을 가지고 비뚤배뚤한 자국을 감친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으로서만 사랑을 지속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신의 고독을 메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이라는 떨림을 함께 느낌으로써만 사랑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사랑에 대한 질문을 마칠 수 없었기에 이 시를 썼다. 컴컴하게 멀어버린 눈으로, 알아볼 수 없게 늙어버린 너의 모습을 알아보듯, 먹먹하게 멀어버린 귀로, 분간할 수 없이 울어대는 너의 목소리를 알아듣듯. 내 안의 살아가고 죽어가는 노인과 아기에게 썼다.

나를 때린 중학생 오빠에게서 받았던 편지봉투 안에는 봉숭아 씨앗이 들어 있었다. 그 봉숭아 씨앗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내가 왜 맞았던 건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버려졌겠지. 쓰레기통 속에 캄캄하게 버려져, 다시는 싹을 틔울 수 없게 되었겠지. 그 시간의 나는, 잠든 아이의 숨소리 곁에서 느끼고 있는 이 밤의 고독을 상상하지 못했겠지. 이 밤의 내가, 저 시를 쓰며 느꼈던 나의 고독을 정확하게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이.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지금의 내가 되었고, 나에게서 나로 이어지는 시간들은 구불구불하고 컴컴하다. 검은 숲에서 검은 숲으로 이어지는 끝나지 않을 오솔길처럼. 지금의 나의 목소리가, 그때의 나에게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녕, 하고 안부를 묻고 싶다.

하재연 시인
하재연 시인
이 글을 쓰는 중에 나는 싹트지 못하고 버려진 봉숭아 씨앗에 대해 기억해 내었다. 언젠가는 그 씨앗의 캄캄한 어둠에 대해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하재연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을 냈다.


나는 조금씩 살고, 조금씩 쓴다

“나는 가능하다면,/ 명료해지고 싶습니다.// 밤과 낮, 같은/ 단순한 어휘를 쓰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내가 거기 속하는지/ 궁금합니다.”(‘12시’)

하재연의 언어는 투명하고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유리 위를 구르는 잘 응집된 물방울 같다. 물방울들은 아주 미세해서 우리가 적당한 수준에서 ‘연속’으로 이해하기로 한 것들 속에 들어 있는 무수한 ‘틈’을 유영한다. 더 정확히는, 하재연의 언어-물방울들은 이 균열로부터 흘러나온다. 존재의 틈에서, 관계의 틈에서, 삶의 틈에서, ‘나’의 틈에서 계속되는 누수의 물방울들은 언어의 틈을 그대로 통과해 우리의 의식을 벗어난다. 언어에도 수많은 구멍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재연은 언어라는 성근 틀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을 언어로, 언어와 함께 저장하고자 하는 불가능한 꿈을 위해 시를 쓴다.

하재연은 단순한 어휘로 뭉뚱그려지는 것들을 미세하게 분할해 다시 서술한다. 그녀의 어휘와 문장은 간결하지만 매우 섬세해서 기존의 언어가 건너뛴 빈 곳들이 있음을 알게 한다. 계속 우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한 번도 같은 형태로 반복된 적 없는 존재와 삶의 균열들이 조금 더 또렷이 감각된다. 그러나 이 균열들 탓에 ‘나’는 끝내 명료해질 수 없으며 명료하게 말할 수도 없음을 하재연은 안다. 틈에 틈으로 맞서, 제아무리 많은 행간을 품은 언어를 빚는다고 해도 말이다.

하재연의 시는 언어의 역량에 대한 행복한 믿음을 구축하기보다, 존재의 불완전성과 그로부터 파생한 언어의 불완전성을 담담히 직시하는 쪽을 택한다. 살아가는 일에도, 말하는 일에도 명료해질 수 없는 ‘나’는 단지 개인적이며 순간적인 체감을 간략히 진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로맨티스트’). 그리고 조금씩 쓴다. 불완전한 채로 살아가고 말하기. 하재연은 삶의 조건을 능동적인 행위로 바꾼다. 조금 사는데 더 많이 살고, 조금 말하는데 더 많이 말하는 역설적인 방식. 과잉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삶과 시의 윤리.

김수이/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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