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완하는 ‘시민의회’ 만들자” ‘헌법 다시보기’ 연속 심포지엄-김상중·오형철 교수
‘헌법 다시보기’ 연속 심포지엄
기존 국회를 보완하는 ‘시민의회’를 새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이야기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사회학)와 오현철 한양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25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헌법 다시보기’ 연속 심포지엄에서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되는 시민의회를 헌법에 규정하자고 나란히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이를 현행 국회와 구분되는 ‘시민의회’라고 불렀고, 오 교수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와 분리된 ‘국민부’라고 이름붙였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두 학자가 시민의회라는 대안에 접근하는 경로는 조금 다르다. 김 교수는 “시민심의권의 제도화”, 오 교수는 “토의민주주의의 제도화”에 각각 주목했다. 그러나 이들이 문제삼는 대상은 같은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를 뼈대로 삼는 한국의 헌정체제가 국민주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먼저 김 교수는 “대규모화되는 갈등이 빈번해지고 있지만 이를 현재의 헌정 체제가 적절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로 대표되는 대의체제는 이미 무기력증을 드러냈고, 행정부의 관료적 보완과 사법부의 심판도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김 교수는 “그 보완책으로 주요 공공의제에 대한 시민심의권과 이를 위한 제도적 기구로서 시민의회 설치를 헌법에 담자”고 말했다. 이때 시민의회는 선거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자격을 갖추고 자발적으로 등록한 시민들 가운데 일부를 무작위로 추출해 의회를 구성하고 정기적으로 이를 다시 교체하는 식이다. 고대 그리스와 현대 스위스, 미국의 배심제 등에 적용되고 있는 이른바 ‘추첨 민주주의’ 원칙이 적용된 형태다. 이때 시민의회의 결정에 대해서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거부권을 갖고, 헌법재판소는 위헌 심사를 할 수 있다. 오 교수의 논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는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적 한계에 더 밀착했다. 오 교수는 “이제 국민주권의 원리는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이 됐고, 실제로는 정치인·언론인·선거전문가 등이 선거와 여론 조작을 통해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하는 ‘전문가 주권’이 관철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제는 이를 국민투표·국민소환·국민발의 등의 직접민주주의로 단순 보완하는 게 대안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국민투표 등은 민주적 정책결정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필수적인 토의의 과정을 경시하고, 이로 인해 엘리트들의 조작에 의해 결과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투표가 아니라 공적 대화와 토의다. 오 교수는 “한국처럼 대의정치과정이 왜곡돼 있고 대의기구가 내린 판단의 정당성이 의심스런 경우에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길은 국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토의적 정치과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제4부의 신설’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기존의 입법·사법·행정부로부터 독립해 일반시민들로 구성되는 제4부, 즉 ’국민부’를 구성하자”는 게 오 교수의 제안이다. 이때 국민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 재판소를 대체”한다. 국민부는 “국가기구간 권력 관계, 기본권의 준수 및 확장, 헌법 해석, 국군 해외파견 및 전쟁 수행 등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한다.”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사실상의 최고 권력기구다. 오 교수가 구상하는 국민부 역시, 김 교수의 시민의회처럼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에 의해 구성된다. 아직은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구상인만큼 반론도 나왔다. 토론에 참가한 김도균 서울대 교수(법학)는 두 교수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시민심의기구의 도입이 오히려 공공적 결정에 더 큰 혼란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시민심의권을 헌법에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시민사회의 심의와 성찰이 갖고 있었던 역동성을 거세시키는 결과를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헌법이 아니라 법률의 차원에서 보장”하는 방안을 또다른 대안으로 제시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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