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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희생자이자 구원자 다룬 시극

등록 2016-07-14 20:27수정 2016-07-14 20:31

나비잠
김경주 지음/호미·1만3000원

김경주(사진)의 시극 <나비잠>은 2013년 서울시극단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시인으로 출발한 김경주는 희곡집을 세 권 내고 올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될 정도로 희곡에 각별한 애정을 표해 왔다. 특히 시적인 압축과 상징을 기조로 삼은 <나비잠>에서 이 시인 겸 극작가의 특장이 잘 발휘되었다.

이야기는 조선 건국 초기인 1390년대 중반, 사대문 성벽 공사가 한창인 한양을 무대로 삼는다. 성벽 공사 지휘를 맡은 대목수는 “무너진 성벽에 죽은 사람의 머리통을 박아 넣어서라도 완성해야 한다”며 공사를 독려하는데, 가뜩이나 가뭄과 역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공사 진척은 더디기만 하다. 백성들은 노역에 지쳐 성벽 아래로 떨어져 죽거나 감시를 뚫고 도망치기 일쑤. 이런 가운데 성벽에 귀를 대고 백성의 울음소리를 엿듣는 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자를 잡아들이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부모를 잃었으나 사람들의 젖동냥으로 살아남은 소녀 달래가 성벽에 귀를 대고 울음소리를 들으려는 인물. 대목수는 달래를 잡아들이려다가 자신이 자객들의 화살에 맞아 쓰러지고, 그런 대목수를 달래가 구해 주면서 갈등은 방향을 튼다. 한편 대목수의 친동생으로 어릴 때 헤어졌던 악공이 마적떼의 첩자가 되어 나타나는데, 지친 악공 역시 달래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다. 그러니까 달래는 모든 힘없고 약한 자들을 위로하는 구원자의 면모를 지닌다. 그러나 성벽 공사 마무리와 가뭄 해소를 위해 당국은 달래를 잡아 희생 제의를 치르고자 하고,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북극광이 반짝인다. 흑점이 캄캄하다. 바람 소리가 점점 무섭게 가까워진다. 여기는 누구의 울음인가. 이 성은 누구의 잠 속인가?”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인 제사장의 대사에서 보듯, <나비잠>은 명료한 서사보다는 모호하고 매력적인 이미지가 승한 편이다. 1970년대 아기장수 설화를 극화한 최인훈의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극중에서 악공에게 하는 스님의 말은 음악만이 아니라 문학을 포함한 전체 예술의 본질과 의무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악사란 좋은 소리를 들을 줄도 알아야 하지만 때론 세상의 울음소리를 볼 줄도 알아야 하네. 지금 이 세상을 보게. 매일 사람들의 눈을 드나드는 저 슬픈 가락이 자넨 보이지 않는가?”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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