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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태하고 성찰 없는 ‘중심’에 던진 질문

등록 2016-07-14 20:29수정 2016-07-17 18:54

정의를 위하여: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적 성찰
강남순 지음/동녘·1만4000원

코즈모폴리터니즘, 페미니스트 신학, 여성신학과 생명사상을 오래 연구해온 강남순 교수(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가 새 책 <정의를 위하여>를 냈다. 그는 급진적(radical)이란 말 속에 ‘뿌리로 간다’(going to the root)는 의미가 담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글이 ‘급진적’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왜’라고 캐묻기 때문에 그의 글은 편안하지도, 쉽게 읽히지도 않는다. 이 사회의 ‘중심’에 가까운 독자일수록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강 교수의 글은 허세 없이 담박하다. 글 속에 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위계적 자세도 묻어나지 않는다. 책 제목에 언급한 정의(正義)를 간단히 정의(定義)하지 않는다. 그보다 비판적 저항을 ‘정의’로 가는 노둣돌 삼아 글을 이어간다. 책 전체를 정치적 저항, 사회적 저항, 종교적 저항, 윤리적 저항이라는 4개의 장으로 구성해 여의도 정치와 사회구조 비판은 물론이고 이성애 중심주의, 한국 종교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분석하고 정면으로 비판한다. 차근차근 설명도 아끼지 않는다. 예컨대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이렇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관한 것”이기에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되어가야만 한다.”

자신은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저항적으로 사유하지 않으면서 대안이 무엇이냐고 따지는 ‘중심부’는 지적으로 나태하다. 아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인종적 소수자, 경제적 빈곤층들 같은 사회의 주변부 저항을 거칠다고 나무라며 어차피 동의하지도 않을 대안을 캐묻는 것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지은이는 대중매체, 사회, 국가든 외부 세력이 자신을 대신해 삶의 방향과 대안을 결정하게 해서도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스스로 사유하는 ‘고독의 시간과 공간’ 가지기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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