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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희귀하고도 위대한 캐릭터 ‘버나드 쇼’

등록 2016-07-21 19:15수정 2016-07-21 19:20

극작가·사회주의자·독한 비평가…
유머와 반전의 대가 ‘20년 탐사’ 평전
‘더 나은 사회’ 만드는 투쟁에 ‘온 힘’
버나드 쇼-지성의 연대기
헤스케드 피어슨 지음, 김지연 옮김/뗀데데로·2만5000원

“종교는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세상은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세상은 개선되어야 할 곳임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극작가, 비평가, 사회주의 사상가, 논객, 정치가… 평생 ‘1인 다역’의 삶을 산 버나드 쇼(1856~1950)는 유머와 기개, 재능과 상상력을 무기 삼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700쪽에 이르는 평전 <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는 쇼의 어린 시절부터 극작·비평 활동, 연애와 결혼, 무엇보다 사회주의자로서 그의 인생 전체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배우 출신 전기작가 헤스케드 피어슨은 20여년 동안 그의 곁에서 쇼를 ‘탐사’했다. 이 책은 1942년, 쇼가 죽기 8년 전에 발표되었다.

‘반전의 풍자가’로도 유명한 버나드 쇼의 기질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엄숙하고 신성하게 여겨야 할 상황일수록 “그걸로 웃기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쇼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아버지가 열네살 때 수영할 줄 알았기 때문에 로버트 삼촌을 살릴 수 있었어”라고 말한 뒤 “솔직히, 살면서 그렇게 후회되는 일도 없었단다”라고 덧붙였다. 쇼도 비슷했다. 나중에 누군가 “재미로 살상하는 걸 혐오하세요?”라고 묻자 그는 “그야 누굴 죽이느냐에 따라 다르지”라고 대답했다.

쇼는 “열살 이전에 나는 이미 성경과 셰익스피어에 통달했다”며 으스댔지만 사실 노력파였다. 20살부터 9년 동안 영국박물관 독서실에 틀어박혔고 매일 어마어마한 분량의 글을 썼다. 25살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정신력이 나 정도 되는 사람은 사체를 먹지 않아.” 26살에는 ‘성 마르크스’의 복음을 접하고 사회주의자로 ‘개종’했다. 당시 영국식 사회주의인 페이비어니즘의 지도자 시드니 웹과 비어트리스 웹을 만난 것을 “최고의 행운”이라고 쇼는 말했다. 웹 부부와 쇼 부부(부인 샬럿 쇼)는 런던정경대(LSE)의 설립에 주춧돌을 놓았으며 영국식 사회주의 현실화에 앞장선 동지였다.

젊은 시절 쇼는 거리나 광장, 학술회의, 시청 등에서 12년 동안 주 3회씩 연설했다. 야유꾼들의 반론을 예상해 주도면밀한 답변을 준비했으며, “골백번 써먹었던 이야기도 마치 즉석에서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음악·연극·미술 비평가로서 이상한 작품을 만나면 어김없이 증오에 불타올랐고 포악해졌다. 명배우와 계약하면서는 “서명하시겠습니까, 논쟁하시겠습니까?”라고 까탈스럽게 물었지만 생존하려 고군분투하는 연극계 동료들한테는 아낌없이 수익금을 나눴다.

“나는 셸리, 바그너, 입센과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사회개혁가이자 원칙주의자였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자평했다. 뗀데데로 제공
“나는 셸리, 바그너, 입센과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사회개혁가이자 원칙주의자였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자평했다. 뗀데데로 제공
극작가로서는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부동산 문제를 다룬 <홀아비의 집>, 직업여성을 등장시킨 <워런 부인의 직업> 등 극장과 삶의 무대 양쪽에서 비판, 풍자, 유머 가득한 솜씨를 두루 뽐냈다. 6년 동안 지방의원으로 일하며 고용, 질병, 주거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도 전력했다.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의 ‘절친’이었지만 여권을 옹호했다며 비난받기도 했다. 남녀평등, 소득평등, 동물실험, 의료, 형벌, 공연 관행 문제 개선이 모두 그의 몫이었다.

쇼는 변혁적 ‘민중’을 믿은 반면 비합리적 ‘대중’을 불신했다. 영국 국민들이 타이타닉 호의 비극적인 사건 앞에 선장과 승무원들을 영웅으로 추앙하려 하자, 쇼는 선장 등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며 비난해 ‘공공의 적’이 되었다. “새로운 저널리즘의 도덕적 가치를 마구 떨어뜨리”는 언론이 만들어낸 저속한 멜로드라마에 대중이 놀아난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자타공인 ‘무쇠 이론가’로서 필봉을 휘둘렀다. “화내지 않고” “분열시키지 않으면서” 논쟁을 이끌어 사회주의 단체를 겨냥한 포화 속에서도 페이비언협회를 지켜냈다.

94살까지 장수했다지만 어떻게 한 사람이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쇼는 술·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였고 섹스를 덜 중시했다. “지성에 대한 열망은 섹스에 대한 열망에 비하면 강도는 덜하지만 평생 지속되고 진화 과정에서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고 그는 밝힌다. 휴식을 몰랐고 운동 삼아 연설을 했으며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지치면 희곡을 썼다. 책에는 그밖에도 로댕, 아인슈타인, 스탈린, 레닌 부인인 크룹스카야를 만난 일화, 노벨문학상 수상 뒷이야기, 세계일주 등 에피소드들이 고루 담겼다. 한 사람의 생애를 꼼꼼하게 복원한 전기이자 19~20세기 서구 문화사로서, 거듭 읽을수록 전대미문의 희귀한 캐릭터에 놀라게 된다. 그러니, 닮는 것은 불가능하다. “버나드 쇼는 오직 한 명뿐이다.”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 채식을 하면 버나드 쇼처럼 된다는 헛소문이 나돌자 그가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쇼의 유머와 인격에서 위대함의 증거를 찾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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