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사회주의자·독한 비평가…
유머와 반전의 대가 ‘20년 탐사’ 평전
‘더 나은 사회’ 만드는 투쟁에 ‘온 힘’
유머와 반전의 대가 ‘20년 탐사’ 평전
‘더 나은 사회’ 만드는 투쟁에 ‘온 힘’
헤스케드 피어슨 지음, 김지연 옮김/뗀데데로·2만5000원 “종교는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세상은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세상은 개선되어야 할 곳임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극작가, 비평가, 사회주의 사상가, 논객, 정치가… 평생 ‘1인 다역’의 삶을 산 버나드 쇼(1856~1950)는 유머와 기개, 재능과 상상력을 무기 삼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700쪽에 이르는 평전 <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는 쇼의 어린 시절부터 극작·비평 활동, 연애와 결혼, 무엇보다 사회주의자로서 그의 인생 전체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배우 출신 전기작가 헤스케드 피어슨은 20여년 동안 그의 곁에서 쇼를 ‘탐사’했다. 이 책은 1942년, 쇼가 죽기 8년 전에 발표되었다. ‘반전의 풍자가’로도 유명한 버나드 쇼의 기질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엄숙하고 신성하게 여겨야 할 상황일수록 “그걸로 웃기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쇼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아버지가 열네살 때 수영할 줄 알았기 때문에 로버트 삼촌을 살릴 수 있었어”라고 말한 뒤 “솔직히, 살면서 그렇게 후회되는 일도 없었단다”라고 덧붙였다. 쇼도 비슷했다. 나중에 누군가 “재미로 살상하는 걸 혐오하세요?”라고 묻자 그는 “그야 누굴 죽이느냐에 따라 다르지”라고 대답했다. 쇼는 “열살 이전에 나는 이미 성경과 셰익스피어에 통달했다”며 으스댔지만 사실 노력파였다. 20살부터 9년 동안 영국박물관 독서실에 틀어박혔고 매일 어마어마한 분량의 글을 썼다. 25살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정신력이 나 정도 되는 사람은 사체를 먹지 않아.” 26살에는 ‘성 마르크스’의 복음을 접하고 사회주의자로 ‘개종’했다. 당시 영국식 사회주의인 페이비어니즘의 지도자 시드니 웹과 비어트리스 웹을 만난 것을 “최고의 행운”이라고 쇼는 말했다. 웹 부부와 쇼 부부(부인 샬럿 쇼)는 런던정경대(LSE)의 설립에 주춧돌을 놓았으며 영국식 사회주의 현실화에 앞장선 동지였다. 젊은 시절 쇼는 거리나 광장, 학술회의, 시청 등에서 12년 동안 주 3회씩 연설했다. 야유꾼들의 반론을 예상해 주도면밀한 답변을 준비했으며, “골백번 써먹었던 이야기도 마치 즉석에서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음악·연극·미술 비평가로서 이상한 작품을 만나면 어김없이 증오에 불타올랐고 포악해졌다. 명배우와 계약하면서는 “서명하시겠습니까, 논쟁하시겠습니까?”라고 까탈스럽게 물었지만 생존하려 고군분투하는 연극계 동료들한테는 아낌없이 수익금을 나눴다.
“나는 셸리, 바그너, 입센과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사회개혁가이자 원칙주의자였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자평했다. 뗀데데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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