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인 겸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의 에세이 삼부작이 한꺼번에 번역 출간되었다. “내가 계속 글을 쓰는 건 내가 아주 잘한다는 기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작가들이 너무 못한다는 기분이 들어서지.” 시공사 제공
고양이에 대하여, 글쓰기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각 권 1만2000원, 1만3800원, 1만3800원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소! 타자기의 소리. 이따금은 내가 원하는 건 타자기의 그 소리였던 것뿐이라는 생각도 해. 그리고 기계 옆에 놓여 있던 술, 맥주와 스카치위스키뿐.”
‘빈민가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독일계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1920~1994)가 쓴 시와 에세이를 주제별로 엮은 책 <고양이에 대하여> <글쓰기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가 한꺼번에 나왔다. 앞서 부코스키의 소설 <우체국> <여자들> <호밀빵 햄 샌드위치>를 옮긴 박현주가 번역을 맡았다. 부코스키는 또다른 소설 <팩토텀>과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등도 국내에 번역돼 있는 작가다.
<글쓰기에 대하여>는 첫 단편을 발표한 이듬해인 1945년 잡지 편집자의 원고 게재 거절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부터 세상을 뜨기 1년 전, 40년 동안 문을 두드렸으나 좌절했던 시 잡지 <포에트리>에 마침내 시 세 편을 싣게 된 데 대한 감사 편지까지 반세기에 걸친 작가생활 중 잡지 편집자와 동료 작가 등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글쓰기에 관한 것을 따로 모은 책이다. 부코스키는 1944년 잡지 <스토리>에 단편을 발표했으나 그 뒤 10년 동안은 글을 쓰지 않았다. 1960년에 쓴 한 편지에서 그가 스스로 밝힌 이력은 부코스키 문학의 바탕을 이루는 밑바닥 삶의 세목을 보여준다. “배송 사무원, 트럭 운전사, 경마꾼, 술집 붙박이 단골, 매춘부의 기둥서방, 신문사 창고 십장, 백화점 창고 직원, 주유소 직원, 집배원….”
이런 삶에서 우러난 부코스키 문학이 기성 문단의 깔끔하고 단정한 ‘예술’에 거리를 두는 것은 당연한 일. 1972년에 쓴 한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술을 마시고 여자랑 하고, 술집에서 발광하고, 창문을 깨고, 죽도록 얻어맞고, 살았어. 난 뭐가 뭔지 몰랐소. 여전히 알아내려고 하는 중이오. (…) 난 심지어 나의 무지를 사랑하오. 무지의 노란 버터 묻은 배를 사랑해. 나는 타자기 같은 혀로 내 저주받은 영혼을 핥지. 나는 전적으로 예술을 원하진 않소. 먼저 오락을 원하지.”
편지에서 보이는 거침없고 도전적인 어투는 그의 시와 소설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부코스키 스타일’이라 할 법하다. 놀라운 것은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는 무절제하고 방탕한 삶 속에서도 글쓰기와 문학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거의 순교자적인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서른다섯 즈음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쉰살이 되면서는 우체국 일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어 죽을 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써낸 그는 낭독회나 세미나, 문학 강연 같은 행사 초청을 모조리 거절했다. 대신 술을 마시고 글을 썼다. 1967년에 쓴 한 편지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오. 타자기 앞에 앉아서 단어를 적어 내려가지. 그게 본질처럼 보일 거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고, 세미나에 앉아 있는 게 아니고, 열광하는 군중에게 낭독하는 게 아니고. 왜 이렇게 다들 외향적이 되어야 하나? 내가 배우가 되고 싶었다면, 할리우드에 카메라 오디션을 보러 갔을 거요.”
<사랑에 대하여>에 묶인 시들은 두 아내를 비롯해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과 딸 마리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 노래라고는 해도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에 못지않게 징그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과감한 묘사와 이야기들을 담았다. 이별 쪽지를 남기고 떠났던 연인 샐리가 술에 만취된 채 돌아와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오줌을 누고, 그 상태로 씻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인 샐리와 사랑을 나눈 다음 두 사람이 차례로 화장실에 가서 토하는 이야기를 그린 단편소설 같은 장시 ‘사랑’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늦은 나이에 얻은 어린 딸에 대한 사랑 표현 또는 죽기 1년 전 아내에게 한 고백에서는 부코스키답지 않게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평생 고양이와 함께했던 그가 고양이를 노래한 시들 역시 마찬가지다.
“싸움에 져서/ 의자에서/ 일어나/ 나오는/ 늙은이/ 그러면 아이는/ 바라보며 오로지/ 사랑만을 발견하네/ 아이의/ 장엄하고/ 무한한/ 마법 같은/ 햇빛 속에서/ 나는 그런 사랑이/ 되어버렸지.”(‘마리나 루이즈의 18개월을 기념하여’ 부분)
“걔들은 불평은 해도 결코/ 걱정은 안 해./ 놀랄 만큼 위엄 있게 걷지./ 인간들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단도직입적인 단순함으로 잠들고.// (…) // 기분이 처질 때는/ 그저/ 내 고양이들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지/ 그러면 내/ 용기가/ 돌아와.”(‘내 고양이들’ 부분)
출판사는 부코스키 에세이 삼부작 출간을 기념해 ‘부코스키와 나’라는 비매품 부록을 함께 내놓았다. 번역자 박현주가 자신과 부코스키의 인연을 털어놓은 글을 비롯해 소설가 정지돈·오한기와 서평가 금정연이 각각 자기 식으로 부코스키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글을 보탰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