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개발의 정석
임성순 지음/민음사·1만3000원
임성순(사진)의 소설 <자기 개발의 정석>은 주인공 ‘이 부장’이 아들뻘 청년한테 무지막지하게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건장한 상대의 주먹에 속수무책으로 몸을 맡긴 상태에서도 이 부장은 생각한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그에 대한 답에 이 소설의 핵심이 들어 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이 부장도 알고 있었다. 오르가슴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말 그랬다.”
<자기 개발의 정석>은 마흔여섯 살 중년 남자인 이 부장이 전립선염을 치료하고자 병원에 갔다가 항문 안으로 집어넣어 전립선을 마사지하는 도구 아네로스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도구에 의지하기 전, 검사를 위해 남자 의사의 장갑 낀 손가락이 항문을 헤집자 그는 본의 아니게 사정을 하게 된다.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다 큰 어른이 다른 남자 앞에서 사정없이 사정하는 일은, 사정상 사정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해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용납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인용문에서 보듯 작가는 마흔여섯 살에 “처음 오르가슴을 느낀” 이 부장의 성적 발견과 모험의 여정을 시종 익살맞은 어투로 좇는다. 치료 목적으로 구입한 기구를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서 사용하기 전 협탁 위 가족사진을 벽 쪽으로 돌려놓고 눈물까지 흘렸던 이 부장. 수치심과 분노를 가라앉히고자 항우울제까지 복용해야 했던 그는 그러나 머지않아 미처 맛보지 못했던 오르가슴을 아네로스가 제공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환희의 비명을 지르게 된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소설 서두부의 폭행 장면은 그렇게 “기쁨을 아는 몸”이 된 이 부장이 더 강렬한 오르가슴을 찾아 탐험에 나섰다가 맞닥뜨린 첫 번째 시련이었다. 그가 ‘인생 최대의 위기’ 목록 1위로 꼽지 않을 수 없게 된, 소설 마지막의 ‘웃픈’ 장면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학창 시절 <수학의 정석>을 파고 또 판 끝에 대학에 들어갔고, 그 정신과 열정으로 대기업 부장 자리에까지 오른 주인공. 아내와 딸을 캐나다로 보내고 ‘기러기’ 신세가 된 그의 직장 내 분투기는 이 외로운 중년 사내의 성적 모험담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임성순은 2010년 장편 <컨설턴트>로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문근영은 위험해> <극해> 같은 장편소설을 펴냈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