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지음/책세상·1만5000원 우리나라에서 역사 교과서를 전쟁터로 삼은 ‘역사 전쟁’은 2000년대 들어 ‘뉴라이트’ 세력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라 비판했고,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이제는 역사에 대해 단 하나의 서술만 강제하는 국정 교과서가 부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민주주의’를 중심 주제로 삼아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가 내놓은 <역사 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은 이 같은 ‘역사 전쟁’의 양상과 그에 담긴 의미를 깊게 들여다보는 책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출간 등 한·중·일 동아시아 시민이 함께 하는 ‘역사 대화’ 작업에 참여해온 지은이에게, “이념적 정쟁”에 붙들려 “학문적 공론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국 내 ‘역사 전쟁’은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할 연구 주제였다고 한다. 수차례 교과서 파동 덕분에 ‘역사 전쟁’의 양상 자체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은이는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우파의 ‘반공주의’에 맞선 역사학계의 ‘반반공주의’가 한국 역사 교과서 논쟁의 주된 특질이라고 짚는다. 종합적으로는, 친북 프레임과 친일 프레임이 맞붙는 ‘민족 대 반민족’과, 민중사관과 자유주의 문명 사관이 맞붙는 ‘좌 대 우’의 대립 구도가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보수 권력과 역사학계의 대결” 구도를 보이는 이런 역사 전쟁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역사 전쟁은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는 가운데 새로운 우파 또는 보수 세력이 등장하고, 그들이 반사회주의적 시장주의와 국가주의 노선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 투쟁의 수단으로 역사 교과서에 주목하면서 일어난 보편 현상”이라고 짚는다. 20세기 역사학은 강자보다는 약자,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눈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이 때문에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보수 권력과의 충돌이 필연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역사 교육 지침서인 <역사표준서>에 대해 보수 권력이 “우리나라가 악하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고 비판을 쏟아냈고, 2013년 영국에서는 캐머런 보수당 정부가 ‘다문화가 아닌 백인단일문화적 관점에서 자랑스러운 영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역사 교육 과정 개정을 시도한 바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원주민에 대한 범죄로 가득한 과거사를 가르친다’며 보수 권력이 역사학계를 상대로 역사 전쟁을 벌였다. 서로의 간극이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끝없는 전쟁에 대해, 지은이는 ‘민주주의 논쟁’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역사 전쟁의 쟁점들을 학문적 공론장으로 끌어들여 본격적인 담론 투쟁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논쟁”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놓고 논쟁한다면, 이념적 정쟁이 아닌 학문적 공론장의 담론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반시대적 정책을 철폐하는 것이 선행과제라고 지적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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