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출판인회의 회원들 의견을 듣고 있다. 나설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나가겠다.”
윤철호(55)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이 내년 2월로 예정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회장 선거 출마 의사를 재확인했다.
사회평론 대표인 윤 회장의 이런 발언은 출판계 양대 조직인 출협의 3년 임기 회장(현 고영수 회장)과 출판인회의의 2년 임기 회장 선거가 겹치는 내년 2월을 반년 앞두고 투표권 및 회원 자격 정비와 차기 회장 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그는 지난달 출판전문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인터뷰를 자청해 출사표를 던졌다.
이미 출협까지 포함한 출판계 인사들을 두루 접촉해 의견을 들었다는 윤 회장은 4일 “반응이 괜찮다”, “내부 비토 세력은 없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느닷없이 출판인회의를 해체해서 출협에 들어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출협을 나와 출판인회의를 결성한 20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박맹호(민음사 대표) 출협 회장 연임 실패 뒤 더 많이 쌓인 앙금을 해소하고 협력 분위기를 만들어 출협이 제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게 먼저다. 통합은 그다음에나 생각해볼 문제다.”
1998년 외환위기(아이엠에프 사태) 때 200여개 단행본 출판사가 출협에서 이탈해 출판인회의를 만들었고, 2008년 출협 선거에서 박 회장의 연임 시도가 실패하면서 또다시 140~150개의 단행본 출판사(창비·은행나무·들녘 등 포함)가 출협과 결별했다. 따라서 내년 출협 선거에 그가 후보로 나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출판인회의와 재통합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출판계는 지금 미래 전망이 너무나 불투명하다. 이대로는 사회문화적 위상의 가속적인 추락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사업은 계속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에서 무슨 자부심이나 전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윤 회장은 문제는 출판계 내부에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출판산업과 출판계를 바라보는 정부의 잘못된 시각과 정책 탓이 크다고 본다. 그는 “출판산업 해체론적 시각”이라고 표현했다. “출판산업을 디지털 문화까지 포함하는 문화의 원천 소스(콘텐츠)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미래산업으로 보느냐, 나눠먹기 식의 분배정책으로 적당히 관리하면 될 사양산업으로 보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 외환위기 이후 디지털·영상 산업 육성에서 출구를 찾으려 했던 이 나라 관료들은 경제 부처까지 포함해서 해체론적 시각에 갇혀 있고, 그 때문에 20여년 종이책 중심의 출판산업 푸대접으로 이어졌다.”
프랑스는 물론 이웃 일본·중국과도 대비되는 이런 유별난 한국 관료들의 신자유주의적 시각이, 도서정가제 시행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온라인 대형서점에 대한 차별적 우대 정책, 교육방송(EBS)의 참고서·교과서 독점적 공급을 통한 막대한 출판업계 잉여 유출 등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판단한다. “2002~2010년 사이 1조5천억원이나 조성된 문화산업지원기금 중 단 한 푼도 종이책 출판에는 투입되지 않았으며”, “단 한 명의 출판산업 전문인력도 부처에 배정하지 않는” 정부의 반진흥 정책이 출판을 사양산업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특히 출판인회의에서 설립을 제안하고 정관 작업까지 함께 한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회유와 분배, 무마를 통해 출판계 힘의 결집을 막고 분열시키는 도구”,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애초 약속과 달리 출판계와 무관한 사람을 원장으로 앉히고, 세종도서 사업과 간행물윤리위 예산·직원급여 빼고 나면 출판진흥 예산은 고작 수십억원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출판인을 진흥원장에 앉히고, 9인 이사진 중 5인 이상을 출판계에 배정하는 등 지배기구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윤 회장의 얘기는 출판산업을 망가뜨리고 있는 정부의 잘못된 출판정책을 바로잡으려면 출판계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분할통치에 이용돼온 출협을 바꿔 통합의 구심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어차피 힘도 없는데 뭘 할 수 있겠느냐,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다는 내부 허무주의”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쪽에서는 출판 관련 전문가회의 등을 통해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윤 대표의 출협 회장 출마 불가’ 방침을 밝히는 등 벌써부터 민감하게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인회의에는 450여개 단행본 출판사가, 출협에는 약 600개사가 가입해 있다. 2015년 출협 회장 선거 때 투표권이 있는 회원사 대표는 397명이었다. 출협에는 연간 매출 규모가 수천억원, 많게는 1조원이 넘는 학습지·참고서 중심의 대형 출판사들이 포진해 있다. 반면 출판인회의는 민음사·창비 등 대형 출판사라도 연간 매출 규모가 수백억원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1개사 매출 규모가 수천억원이 넘는 대형 온라인서점과도 비교된다.
윤 회장은 “시민운동 차원에서 도서정가제 등을 추진해온 것은 중소 출판사들”이라며 “매출 1천억원대의 단행본 출판사 10개만 나서면 지금의 한국 출판산업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갑질 하청노동, 노동착취, 사재기 등 최근 터져나온 출판계 내부 문제들에 대해 그는 출판윤리위원회 구성과 윤리강령 제정 등을 통해 “출판 깡패들을 퇴출시키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체 전문 조사연구소 설립도 시급하다고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