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 생활문화사>(전 4권) 발간 기자간담회. 왼쪽부터 기획위원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김종엽 한신대 사학과 교수, 허은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창비 제공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인들의 생활문화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책이 나왔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전 4권, 창비)는 32명의 연구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기획부터 집필까지 모두 3년에 걸쳐 의·식·주 생활문화와 농업·전쟁·경제·북한·민중운동 등 각 분야를 집필한 대기획이다.
30일 정오 서울 중구 한 컨퍼런스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책의 기획위원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 들어 건국절, 역사교과서,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논쟁이 사회갈등적 사안이 되고 있는데, 전쟁 이후 50~80년대 한반도의 사람들이 어떤 집에서 먹고 입고 살았으며 어떻게 행위했는지를 밝혀 역사 인식을 심화해보려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 기획은 <창작과비평> 발간 5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성보(연세대·사학), 김종엽(한신대·사회학), 이혜령(성균관대·국문학), 허은(고려대·사학), 홍석률(성신여대·사학) 교수 등 사학뿐 아니라 사회학·문학·영화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홍석률 교수는 “한국현대사는 지도자 평가논쟁, 공과 논쟁이 주로 진행되다보니 그동안 축적된 생활문화 연구가 조명받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이 분야는 정치와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이 시리즈는 1950~80년대 생활문화사를 10년 단위로 끊어 한권씩 나눴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사회구조’ 변화에 대한 서술이 미약한 미시사의 단점과 ‘개인 삶’의 맥락을 삭제하는 거시구조적 역사접근의 문제를 상호 보완하려 한 시도다. 동아시아사 안에서 한반도의 개인이 어떻게 영향받고 대응해왔는지, 또 시기에 따른 국가의 기획에 노동자, 여성, 학생, 도시빈민 등이 어떻게 순응, 포섭, 일탈, 저항하면서 역사의 주체 또는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는지가 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허은 교수는 “전쟁 이후 냉전시대를 포함한 1950~80년대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첫 기획으로, 개인이 역사적 변화 속에서 주체가 되고 선택지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4권 총 43편의 글 가운데 북한의 생활문화사는 총 8편, 동아시아 분석은 총 4편 포함됐다. 홍 교수는 “북한 생활문화사의 경우, 50년대 북한 사람들의 지구화 경험이나 농업협동화 물결 속에 민속학자들이 현장에 가서 발견한 가족노동이나 풍습의 변화 등 새롭게 발굴하거나 조명된 자료가 많다”고 말했다. 북한의 음악, 여성문제 등도 함께 실었다.
부제 선정에도 많은 토론이 있었다고 출판사쪽은 밝혔다. 50년대 ‘삐라줍고 댄스홀 가고’, 60년대 ‘근대화와 군대화’, 70년대 ‘새마을운동과 미니스커트’, 80년대 ‘스포츠공화국과 양념통닭’ 등의 부제가 그 시대의 열쇠말이 되는 셈이다. 50년대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과 자유부인, 학교와 학생, 60년대 4·19혁명과 70년대 유신, 80년대 민주화운동과 학생, 도시빈민, 여성 등 각 주체의 이야기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시대의 맥락과 사실을 또렷하게 전하면서 미처 기억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일상 정치의 측면을 일깨운다. 이를테면 1960년대 초 유명세를 얻은 전기구이 통닭이 70년대 닭튀김을 지나 80년대 양념통닭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미각체험뿐 아니라 대기업의 곡물·두류 수입, 제빵·제과·식용유 산업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 82년 철저히 권력자의 뜻에 따라 이뤄진 프로야구 개막과 치킨산업의 관계, 프로야구 출범과 중계료·광고수익 등 한국자본주의의 발전도 꼬리 물듯 연관시켜 살펴본다.
뜻밖에 80년대는 분석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필자들이 경험한 시대였기 때문에 객관화가 어려웠고, 축적된 생활사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80년대를 다룬 책 표지 사진은 당시 ‘육상스타’ 임춘애 선수의 성화봉송 장면. 80년대 서론을 쓴 김종엽 교수는 “초상권 문제 때문에 임 선생에게 연락을 해 게재 허락을 얻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생활문화사나 1970년대 국제축구대회인 이른바 ‘박스컵’이나 어린이잡지 <어깨동무>의 발간 같은 어린이 문제 등에 좀 더 접근하지 못해 아쉽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논문형식이 아니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집필해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독자들이 역사에 대해 생각하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과 지향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한계와 장점이 있는지 파악하며 고민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창비 관계자는 “각권 초판 4000부를 찍었는데 벌써 선주문이 상당히 들어왔고, 10만부 판매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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