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강일우 대표이사가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제2사옥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잡고 있다.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을 맞아 강 대표는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라는 창비 모토를 견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명진 기자littleprince@hani.co.kr
1966년 1월, 서울대 영문과 전임강사로 재직 중이던 28살의 청년 백낙청이 창간한 계간 <창작과비평>(창비). 형식과 내용 모두 당대의 파격이었던, 문학과 인문·사회과학을 결합시킨 이 문예지 겸 정론지로 출발한 창비는 이후 반세기, 고난과 영광의 험로를 헤쳐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 그룹으로 성장했다. 대안운동의 중심이자 대안담론 발신처로 한국 지성사와 민주주의 발전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창비가 창사 50년을 맞은 올해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마침내 ‘백낙청 이후’ 창비 시대로 진입한 걸까?
2012년부터 5년째 창비 경영 일선을 책임지고 있는 강일우(51) 대표이사는 인터뷰 서두에 두 가지를 얘기했다. 하나는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라는 창비의 모토를 견지하겠다는 것. 강 대표는 “이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창비의 운영철학”이라며 “열린 자세로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되 50년간 유지돼온 창비인들의 기본정신은 지켜가겠다”고 했다. ‘연속성’의 강조다.
또 한 가지는 “더 큰 출판, 본래적 의미의 출판”을 복원하겠다는 것. ‘백낙청 이후’ 창비의 기본틀이 바로 이것일 수 있다. “출판은 본래 지식과 정보 등을 매체에 담아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금속활자 발명 이후 근대사회의 핵심매체는 종이였다. 신문과 라디오, 텔레비전 등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출판의 역할은 축소됐다. 1990년대 정보통신 혁명 이후 전자화·디지털화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 덕에 본래적 의미의 출판이 가능해졌다. 기존 종이책 플러스 알파, 즉 새 매체를 활용한 ‘더 큰 출판’이다. 전과 비교하면 비용은 많이 들지 않지만, 여전히 일정 규모 이상의 자원이 필요하다. 창비는 이제 그걸 할 수 있다.” 백낙청 체제 이후의 창비 시대를 위한 물적 토대를 갖췄다는 자신감의 표출로 들린다.
1965년생인 강 대표가 서울대 독문과를 나와 1994년 29살 나이에 편집자로 입사했을 때 창비에는 “스물 한두 명쯤”이 일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수가 130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해 창비는 주식회사가 됐고, 1999년 고세현 대표이사 취임과 함께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2005년까지 편집일을 했던 그는 고 대표에게 발탁돼 영업직 훈련을 쌓은 뒤 입사 18년 만에 대표이사가 됐다. “당시 출판계에서 편집과 영업은 물과 기름처럼 구분이 완고했다. 내 경우가 거의 처음 그걸 깼다.”
발행인과 편집인까지 겸하면서 인사권과 재무권을 쥔 강 대표는 ‘현장 총지휘자’다. 창비와 백낙청 명예편집인의 힘이자 탁월한 선택 가운데 하나가 ‘오너 체제’를 탈피해 노·장·청 인재풀을 토대로 앞 세대와 단절 없이 지도부를 교체하는, 이른바 ‘차이나 모델’을 연상시키는 이 창비식 인사체제의 창안일지 모른다.
백 명예편집인과의 관계는? “백 교수는 대표인 내가 일을 벌이면 위험을 피할 지혜를 보태줄 뿐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백 교수는 지난 연말 자신이 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창비 사업에서 완전히 손 떼는 건 아니며 대주주로서 임원 인사나 큰 투자 때 상담자로 돕겠다고 했지만, 잡지 <창비>와의 관계는 “칼같이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창비가 ‘백 교수 1인 체제’라거나 새 지도부 역시 백 교수의 ‘에피고넨’(추종자, 아류)이 아니냐는 냉소적 시선이 존재하지만, 백 교수와 창비는 개의치 않고 제 갈 길 가겠다는 자세다.
창비는 주식회사 창비, 창비교육, 미디어창비 등 3개의 법인체와 독립적인 자매 조직인 세교연구소와 창비학당으로 구성돼 있다. ‘복합그룹’으로 변모한 창비의 이런 확장이 바로 ‘더 큰 출판’의 실체일 수 있다.
연간 매출은 “진폭이 있지만 대체로 200억대 중후반, 많을 때는 300억원을 넘나드는” 규모다. 단행본 출판사들 중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다. 계간지와 문학 등 단행본을 내는 ㈜창비가 200억원 정도로 총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교과서와 참고서, 관련 단행본을 내는 창비교육 매출은 80억원. “서구처럼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도입되고 지금의 대입제도가 혁파되는 교육개혁이 독서시장의 새로운 성장 기반이 될 것”이라 보는 강 대표에게 창비교육은 그때를 대비한 또 하나의 승부수다. 종이책과 스마트폰을 연결한 오디오북 ‘더책’ 등의 사업을 담당하는 미디어창비는 매출 20억원 정도. 작가·독자·도서관·출판사·서점을 연결하는 온라인 독서플랫폼 ‘책씨앗’도 지난 3월 야심차게 출발했다. 어린이·청소년·교양·문학·인문사회·계간지 등 6개 출판부 체제에서 단행본 매출의 40~45%를 어린이·청소년, 30% 정도를 문학 책들이 차지한다.
㈜창비 등 세 법인이 “돈 버는 회사”라면, 담론 개발과 연구를 맡은 세교연구소와 시민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대중과 접촉면을 늘리고 전문 필진을 키우는 창비학당은 “돈 쓰는” 곳이다.
지난해 말 입주한 서울 서교동 새 사옥은 ‘더 큰 출판’을 향한 창비의 전진기지다. ‘본가’인 파주 사옥에 든 ㈜창비와 단행본, 영업과 제작·디자인 등을 빼고, 창비교육·미디어창비 등 2개 법인과 계간지, 문학팀, 그리고 자매 조직들은 모두 대지 340여평, 지하 2층, 지상 7층 건물에 크고 작은 강의실과 스튜디오 등을 갖춘 서교 사옥에 입주해 있다.
올해 개편으로 한기욱 계간지 편집주간(인제대 영문과 교수)이 단행본 문학 분야까지 맡고, 편집주간에서 물러난 백영서 세교연구소 이사장이 단행본 기획편집위원, 염무웅 문학평론가가 창비학당을 맡았다. <창비 주간논평>은 이남주 부주간 담당.
이 모든 사업을 지휘하는 야전 사령관인 강 대표. “백낙청 교수도 현대의 병학(兵學)은 경영학이라고 했다”는 말에서도 자부심이 묻어났다. 백 교수는 현대 세계에선 군사학보다 오히려 경영학이 예전의 병학에 더 가깝다며 세계의 싸움이 자본의 싸움이고 기업의 싸움인 시대에 경영을 통해 올바른 현실 진단과 대응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창비가 지향하는 운동성과 사업성의 결합, 그 최전선 지휘 임무를 강 대표가 부여받은 셈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