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이별
류근 지음/문학과지성사·8000원
류근은 ‘독자 직거래 시인’을 자처한다.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평론가의 평을 들은 다음 시집을 묶어 내는 일반적인 경로와 그는 거리를 두려 한다. 첫 시집 <상처적 체질>(2013)은 수록작 전부가 미발표작이었다. 새로 나온 두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 수록작도 대부분 미발표작이다.
두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을 내고 7일 오후 <한겨레> 사옥을 찾은 류근 시인. “페이스북에서 다방면 사람을 알게 되는 기쁨이 있지만, 글을 올리는 건 하루에 많아야 한 건, 주 4~5회를 넘기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킨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는 1992년 신춘문예로 나왔지만, 문예지의 청탁을 거의 받지 못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시와 무관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그가 권위있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시집을 내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첫 시집은 지금까지 2만부 넘게 팔렸고 새 시집도 서점에 깔리기도 전에 이미 3쇄를 찍을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김광석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썼다는 이력, 텔레비전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의 고정 패널로 매주 화면에 얼굴을 비친다는 점, 무엇보다 ‘페이스북 스타’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이 시인으로서 그의 인기를 뒷받침한다.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한 깊이만큼/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주지는 않는 거다//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나에게 주는 시’ 부분)
류근의 시는 쉽게 읽힌다. 그는 사랑과 이별, 상처와 좌절을 친근한 이미지와 입에 붙는 가락에 얹어 노래한다. 평론가들은 그런 그의 시를 두고 통속미라느니 ‘뽕끼’니 하는 평을 내리는데, 류근 자신은 그런 평가에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싸구려 잡지 식의 천박함과 통속은 구분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속(俗)과 통(通)하는 게 통속 아닙니까. 통속에도 미학과 경계가 있어요. 대중추수주의는 조심해야겠지만, 세속과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기 시의 ‘통속성’에 대한 이런 옹호는 동시대 시를 향한 회의 및 비판과 짝을 이룬다.
“요즘 시는 너무 어려워서 시를 쓰고 공부하는 저 같은 고급 독자도 이해하기 힘들어요. 너무나 높이, 멀리 가 있습니다. 자기들만의 리그, ‘이너 서클’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언어와 의식과 표현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겠지요. 그러나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저는 가능한 한 쉽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그는 “독자와 소통하지 않겠다는 듯, 독자를 외롭게 하는 시들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젠 너무 지쳐서 그들을 탓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 같은 3류 트로트 연애 시인의 역할도 있다는 말은 하고 싶어요.”
류근의 많은 시는 연애시의 외양을 띠며, 특유의 감성으로 연애 경험을 지닌 독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이런 시를 읽을 때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며 마음 스산해지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겠습니다/ 내 기도가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당신은 당신의 기도로/ 나는 나의 기도로/ 서로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살아서 다시는 서로의 빈자리를 확인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서로의 부재가 위안이 되는 삶이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의 손을 놓아준 힘만큼/ 당신도 누군가의 손을 가장 큰 힘으로 잡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노래는 이제 끝났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축시(祝詩)’ 부분)
그의 어떤 시들은 읽기에 아슬아슬하다. “아내 몰래 7년을 끌어온 연애가 끝이 났을 때”(‘아슬아슬한 내부’)라든가 “마누라가 준 용돈으로 용돈 준 여자가/ 다른 남자랑 공항버스 타고 사라지는 뒷모습 보고 와서”(‘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같은 대목을 부인이 보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시인 자신은 “소설은 허구로 인정하면서 시는 시인 자신의 이야기일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게 당혹스럽다”며 “내 시는 사실일 수도 있고 허구일 수도 있지만 진실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